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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세계가

사용할수없는네임들 2017. 6. 29. 20:56

어떤 사이트의 댓글에서 '사실 나는 책 속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일단 책을 '길을 찾는 것'이라는 기능적인 목적으로 읽는다는 것에서부터 저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책을 읽고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삶의 나아갈 방향, 지침을 찾을 수도 있고 성공을 향한 수단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필요한 다양한 무기로서의 지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책에는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작가는 신, 혹은 신의 대리자이다. 작가가 쓰는 글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세계를 품고 있거나, 전달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는 작가가 그만의 시선으로 재창조한 세계가 그려진다.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 인간의 본성, 사건이 발생하는 원리, 사람들의 반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담고 그를 기반으로 일관성있게 서술하는 많은 설명문에서도 우리는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서술하는 어조에서, 사용하는 단어에서, 처음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그 흐름에서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듣고 대신 느낄 수 있다.

 

새삼스럽게 시간이 왕창 비게 되어서, 느긋하게 도서관에 들어가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었다. 내가 사라져 지켜보는 것 같기도 했고, 작가가 되어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꾸준히 책에 붙어있고 싶기도 했으며, 당장 여기서 도망가버리고 싶기도 했다. 시간에 쫓겨 책을 읽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그냥 도서관에 앉아 몇 날 며칠이고 손에 잡히는대로 읽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나는 사서를 지망했어야 했던 걸까? 도서관을 나와서도 얼마간 그 여운에 휩싸여 멍한 상태로 부유했다.

 

 

그냥 너무 오랜만에 책을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