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심리유형/MBTI-INFJ

내 삶이 이토록 타인을 향해있을 줄은

사용할수없는네임들 2017. 11. 5. 16:31

내 삶이 이토록 타인을 향해 있을줄은 나도 몰랐다. 일기를 쓰면 항상 나는 "나"라는 단어를 대단히 많이 사용하고, 내가 무엇을 느꼈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만 쓰는데, 이상하게도 표현의 이유를 찾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 "너"가 있다. 극강 Fe유저인걸까?!

 

최근 본 면접에서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한 가지"를 질문으로 받았다. 나는 "생산성"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의 가치"말이다. 내가 말한 생산성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나의 능력을 꾸준히 키워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가치는 결국, 이러니 저러니 포장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긍정적 영향력= 타인의 인정/ 명예"이었던 것이다.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은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위한 꿈과 포부를 세우라는 류의 조언을 해 줬다. 내가 일관되게 너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참, 그러네 내가 완전히 타인과 관계 없는 나만을 위한 욕구를 언제 추구해 본 적이 있을까? 타인의 시선과 관계 없이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다른 사람 전부를 상처입히더라도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까? 딱히 할 말이 없다. 과거에 고시를 준비할 때에도,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결국 타인과 관계된 것이 동기였다. 고시판을 나온 이후에는 딱히 크거나 장기적인 꿈은 없었고 그냥 소소하게 주변 사람들이 칭찬해주면 좋았고,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게 좋았다. 그래도 죽기전에 이 건 해 봐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것도 나는 나의 이야기와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분석해낸 것을 글로 남겨 타인에게 읽히고 싶었던 것이다. 충격이다.

 

내가 이토록 홀로될 수 없을 줄 몰랐다. -그나마 혼자 하고 싶은 것이라면, 책을 많이 읽고 알고 싶은걸 알고 싶은 것 정도가 있다. 그냥 지식을 쌓아두는 게 좋아서 그냥 이것저것 뒤져보는 걸 좋아한다. 근데 누구나 호기심을 충족하는 걸 좋아하지 않나?- 나는 내가 남과 관계없이 혼자서 꿋꿋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다른사람이 없어도 외로움을 쉽게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내 일에 빠져 있을 때에는 모든 친인들과의 연락이 단절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토록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위해서, 타인에 의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많은 시간동안 차근차근 진짜 나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2년전의 사건이 나에게는 어쩌면 굉장히 큰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나는 무無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마치 바다를 뒤집는 태풍과 같은 시간이었다. 내향성이 폭발하면서 한번 최대한 스스로의 내부로 침잠했던 시간과, 그 전까지는 두려움에 외면해왔던 어쩌면 나를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과, 나에게 "주고받는 감정"에 대해서 일깨워 줬던 상담사분이 참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이렇게 감정이 폭발하는 것은 당장 지금의 취업과, 당장 적응해야만 하는 냉철한 세상에는 전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냥,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 가는 것이 앞으로 장차 내가 살아갈 미래의 50년을 위한 포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S. 그래도 올해 취업은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