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바라보며 푹 쉬기- 호캉스 후기
전염병으로 인해 모든 게 움츠러들었고, 멀리 여행 가기도 어려워져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 새 쌓인 휴가가 소멸할 시기가 됐다. 그걸 4월 중순에서야 발견한 나는 허겁지겁 휴가일정을 잡았고, 마침 타이밍이 좋게 친구에게서 호캉스를 같이 가 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신기하게도 날이 딱 좋았다.
준비한 것 하나 없어 걱정하기 시작한 건 떠나기 전 날이었다. 일정을 일찍 당겨 잡은데다 마침 바쁜 나날이 이어져서 휴가에 대해서는 그 전날까지 잊고 있었다. 교통편마저 마련해 두지 않았다고 하면 믿을까? 사실 호캉스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이전에도 몇 번 친구와 놀러 도심의 호텔에는 가 봤고, 호캉스에 대한 나의 평가는 SOSO였다. 타인이 집안일을 해준 가운데 쾌적한 환경 좋은 침구를 즐기는 일은 확실히 좋다. 온갖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 한 번은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여행을 가면 숙소보다는 새로운 것 구경에 좀 더 열을 올리는 사람인지라, 홀로 호캉스를 가는 일은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급하게 조사한 바로는 조선 베이커리를 보유한 호텔이라 베이커리 메뉴가 맛있다고 한다! 부산에 내려가는 당일 얻은 정보로 나는 짜릿했다.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었더니 친구는 이미 일주일전에 다 찾아본 내용이라고 했다. 아이참, 그러면 몇 개 던져줬어도 좋았을텐데! 입 맛을 다시며 나는 나는 이것저것을 더 살폈다. 해운대역 근처에 있는 호텔, 파크뷰/오션뷰가 있는데 파크뷰도 꽤 괜찮음, 클럽라운지 패키지를 구매해서 조식, 데이타임, 해피아워를 각 1회씩 갈 수 있는데 체크인 전부터 데이타임은 즐길 수 있음...! 자잘한 후기를 찾아보면서 점점 기대감은 몸을 부풀렸다. 사실 부산에 친구와 함께 놀러간 건 처음이었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묘하게 생소해서, 지나는 간판의 한글이 무색하게도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의 느낌이 났다. 특히 해운대에 가까워오면, 산이 잘 보이지 않는 해안에 드높이 서 있는 현대식의-유리창이 건물 면을 가득 메운- 빌딩이 보이는데, 이게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다. 어딘지 SF적인 풍경이었다. 이게 아마도 부산의 부자동네 해운대구의 센텀시티일 것이다. 역시 말로만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많이 달랐다.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 무턱대고 내려간 건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해운대 근처에서부터 나는 계속 꾸준히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역 근처의 번화가는 광화문같은 느낌을 주는 굉장히 넓은 대로였고, 어디선가 바다냄새가 났다. 연차를 쓰고 금요일 오전에 내려간 탓인지 사람 없이 한산한 거리는 대학생 때 갔던 외국여행의 느낌이 났다. 게다가 호텔은 분명 육지에 있었는데도 방풍림으로 분리되어 마치 호텔 하나만을 위한 섬에 들어간 것 같았다. 호텔 앞으로는 드넓은 해운대 해수욕장, 뒤로는 산처럼 나무가 우거진 동백섬, 나는 평범한 호텔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현실과 멀어지고, 일상과 단절되어 홍진을 털어내는 느낌. 여행지로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고풍스러운 면에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더니 방에 들어가니 기둥이나 창틀 같은 것들이 원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벽지가 약간 따뜻한 흰색 느낌이라 어딘지 일본 느낌?이 조금 났다. 색감 때문인지 아늑한 느낌이 났고 밖의 푸른 풍경까지 합쳐져서 그냥 가만히 밖을 보고있기만 해도 긴장이 풀렸다. 꽤 큰 목재책상이 창문 옆에 있었는데 누군가의 서재에 들어온 듯한 기분도 났다. 여태까지 호텔에서 책상에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는데, 여기서는 유난히 책상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만큼이나 자주 드러누웠던 1인용 소파도 좋았다. 완벽한 최신식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 분위기와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창문이 밖으로 완전히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만약 베란다가 있었다면 정말 행복했을 것 같다. 창문 밖으로 보는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창문이 크게 열리지 않다보니 액자에 박제된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조금 더 현실감을 느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이 곳은 어디를 가도 조금씩 나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만약에 내가 작가거나 혹은 뭔가를 창작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더라면 이 곳에 자주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체크인하기 조금 전 데이타임을 먼저 즐기러 갔는데, 라운지에서는 해변을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통유리로 된 넓은 창문으로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데 사진이 정말 예쁘게 나왔다. 간식을 가져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치스러운 평화였다. 해변을 걸으면 유난히 맑은 날씨에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스쳐지나갔고, 축제라며 쌓아 둔 모래조각들 사이로 젊은 연인이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 고향에서도 서울에서도 느낄 수 없는 바닷가의 냄새가 강렬했다. 호텔 뒤쪽 -사실은 호텔 정문방향이므로 앞쪽이라고 해야 맞긴 하다-의 산길을 따라가면 바다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광안대교를 바라보면서 파도소리를 들으면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친구와 우리들의 성격이 불러온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데도 답답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저 그 모든 것들을 덤덤히 나눴다. 그냥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해를 보았다는 투로. 1박만 한 터라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고 좀 먹고 산책 좀 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지만 정말 잘 쉰 느낌이다. 또 가고 싶다. 다음에 갈 때는 꼭 2박으로 묵을 것이다.
(추가)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해피아워 1부는 1시간 제한이 있어서 많이 먹기 힘들었다는 것 정도...? 친구가 해피아워의 무제한 와인을 굉장히 기대했는데 서너잔 마시니까 시간이 끝나버려서 정말 아쉬워했다. 서울이 돌아간 후 와인을 따로 마시겠다고 할 정도. 그리고 조식은 돈을 조금 더 내서라도 1층의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게 더 풍족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