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지 말 것.
최근에 나의 단점 하나를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중요도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혼나다보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다.
그게 뭐냐면, 남들이 요청하지 않은 업무를 스스로 찾아서 진행하는 행동이다.
예전에 학교다닐 때 욕심껏 수업을 신청하다가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아마도 약간의 완벽주의? 통제광적인 성격? 4차원적인 엉뚱함? 넓은시야? 같은 것들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외로 일을 시키는 사람들은 굉장히 대충 일을 던진다. 자기도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혹은 자신도 체계없이 되는대로 일하고 있어서 시켜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는 까닭일수도 있다. 혹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니 품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지. 나는 누군가가 시작한 일에 내가 끼이게 되면 그 업무를 일단 열심히 파악한다. 지금 회사는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고, 지금 있는 팀은 특히나 항상 업무가 바뀌는 편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업무에 대해 정리한 최신 매뉴얼이 대부분 없다.
그런데 파악하다보면 뭔가 다른 것들이 줄줄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혹은 예외가 너무 많아서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고. 그래서 예외들을 분류하고 있으면 추가업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낭비된다. A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A에 연관된 BCDE를 같이 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분명히 필요한 일인 것은 맞지만 함께 일하는 타인은 BCDE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소통의 오류가 발생하고 유기적이고 빠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고, 지금 내가 발견해서 함께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득 다시 생각해보건대, 내가 중요도가 낮은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장 필요한 것은 A라는 중요한 일인데, 그걸 빨리 끝내지 않고 중요도가 낮은 일에 매달려서 팀에 병목이 된 것은 아닐까? 솔직히 가끔, 별도 의논도 없이 해야 하는 일을 조용히 손에서 놓고 업무가 어디에서도 관리되지 않아 팀의 어딘가를 떠다니는 걸 보면서 조금 한심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게 맞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로들의 세계란, 얼마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유기적으로 일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니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말하고... 결국 구체적인 소통과 함께 일할 때는 소통된 대로만 일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던 것이다. 더 잘 일하려고 더 좋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타인과 약속된 곳 까지만 일하는 것이 팀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자세였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요즘 에너지를 과하게 쓰지 않고 중도를 지키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결국 같은 맥락이다. 중도를 지키고 혼자 폭주하지 말 것. 내가 장기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행동강령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