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조각내지 않는 믿음을
요새 새로운 시작을 해 보려고 몇 주동안 하고 있는 게 있는데, 오늘 끝없이 또 불안에 휘둘리다 드디어 스스로에 대해 중요한 한 가지를 알아버리게 된 것 같다.
나는 믿음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믿음은 중요하고 불안함은 위험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특히 효과가 큰 것 같다. 어쩌면 이것도 성격 유형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목표가 있으면 더 불타오르는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해 냈던 것들도, 포시랍게 자랐다는 말을 들은 것도, 온실의 화초같다는 말은 들은 것도 다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불신이 없을 때 굉장히 단단해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꽤 순진하고 눈치가 없었던 터라, 어렸던 시절의 나는 뭐든 쉽게 믿었다. 눈 앞의 선생님, 내게 목표를 말하는 부모님, 사회가 주장하는 만들어진 길에 대해 의심한 톨 없었다. 그래서 전부 바칠 수 있었다. 몸은 피곤하고 가끔 마음이 초조함으로 얼룩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전반적으로는 꽤 안정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나이가 조금 들은 후에 나는 왜 지금 나는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자신감이 없어서? 자존감이 없어서? 혹은 가당치 않게 할 수 없는 것을 바래서? 맞지 않는 곳에 있어서? 끝없이 이유를 찾으며 해결하려고 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한 것을 정말로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문득 생각해보면 단지 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사회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조금씩 눈치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에,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어쩌면 뭔가 틀린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어서 그냥 더 많은 가정을 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렇게 가정하면서 실패 이후를 시뮬레이션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불신하고 차오르는 불안에 손을 뗐다 말았다 하는 거다.
사실 모두에게 세상이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데도. 원래 인생이라는 건 눈 앞의 어둠에 그저 눈 감고 달려가는 것인 건데도. 이것저것 재어보다 보면 결국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건데도... 그래서 어차피 후회할거면 하고 후회하라는 말이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일텐데도 말이다.
장점으로 수치해석을 내세우는 것 치고는 꽤 직감으로 움직이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예전에도 이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 여기 블로그에도 비슷한 글을 언젠가 써 놨을테다. 결국 여기로 돌아오는 구나. 확률은 일어나기 전에 가상의 상태에서 짐작한 확률일 뿐 결국 현실화 되었을 때는 0이나 1. 세상에는 수 많은 우연이 있어서 결국 중요한 시점에는 야성적인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선택한 후에는 그저 하늘의 답을 기다려야겠지. 진인사대천명이랬나. 책상에 붙여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