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캐'가 핫하다. 부캐(부캐릭터)는 게임 용어였지만 요즘은 여기저기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로, 앞에 나서서 얼굴마담을 하는 본캐와 다른 자아, 혹은 캐릭터를 말한다. 대大 1인미디어 시대. 직장인의 4분지 1은 '퇴사'와 '유투버'와 '재테크'를 입에 달고 산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는 시대다. 나의 확실한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 회사에 목 매지 않고 나 스스로 나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사실 부캐라는 건 아주 예전부터 있었던 어떤 삶의 형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정도의 흉내를 내면서 살아간다. 작게는 표정이나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크게는 직장에서 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 까지 분명히 사회에는 어떤 거대한 흐름이라는 것이 있으며, 많은 경우에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은 흐름에 탑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고나면서부터 흐름을 거스르게 태어났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생겨난다. 

 

사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숨쉬는 것처럼 상상하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집까지 걸어오는 매일의 20분동안 한 때 한창 유행이던 애니메이션의 뒷 이야기를 상상했고, 친구와 만났을 때 밤을 새서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 볼까 떠들던 순간이 행복했고, 거의 이십년동안 끝없이 장르소설(판타지)에 빠져있었다. 심지어 일 할 때도 다르지 않아서, 만약에 ~ 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길래 이런 지표가 나왔을까?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편이다. 내게는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게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확신이 없었다. 그냥 적당히 대충 즐기는 것으로 나의 생계를 책임 질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무기로, 내 심장이 아니라 타인의 심장을 저격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할 자신도 없었고, 내가 걸어온 길에서 난데없이 이탈할 힘도 없었으며 내가 도달해야 하는 곳이 명확하지도 않았다. 더불어 남들처럼 나도 내 미래와 먹거리를 위해 공적인 나를 분리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짧은 시간 적당히 취미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토록 부캐를 만들어보려고 안달이다.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으로 끝없이 자유로워지는 일은 과히 중독적이라, 종종 모든 문제를 잊을 수 있게 해 준다. 현생이 바빠 놓아버린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의 생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에 만난 언니는 나에게 부캐생성을 추천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도 조금씩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와 어울린다고, 걱정 없이 한 번 해 보라고. 조금 신기하게도 이 언니는 내가 쓰는 블로그 주소를 모른다. 우리는 대학시절 만나서 자주 이야기를 하는 사이였지 뭔가 함께 작업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언니는 예민한 편이고 감수성이 있으니까 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니까 보기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해 줬다. 나 혼자 불안해하며 조금씩 찾아오던 나의 장점들을 타인이 짚어주는 걸 보니 어쩐지 조금 힘이 났다. 

 

동시에 내가 회사 다니는 게 너무 재미가 없고,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며 징징거렸더니 그래도 어딘가에 주기적으로 출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직장이라는 곳은 다양한 자극을 줄 수 있고 자신만의 내러티브 자본을 쌓을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라고, 열심히 다니라고 응원해 줬다.

 

그 언니는 자기가 걸어온 길에서 용기있게 이탈한 사람이다. 원하는 것을 찾은 다음부터는 불도저처럼 직진직진만을 외쳤고, 그녀의 진정성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분기점에서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소신으로 선택해 왔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 왔기 때문에 항상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 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응원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보통은 나의 떡이 작아보이는 것 뿐으로, 떡이 남에게 있을 때 우리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언니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지금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삶은 본인에게는 힘들었지만 내가 봤을 때에는 희망과 애정으로 생기있게 빛나고 있었다. 나의 과거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을까? 취업을 준비할 때에는 내가 해온 많은 활동들과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어 보였고 나는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인 것 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사실 나는 항상 지금에 만족하기보다 더 나아지는 것을 바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인 게 아닐까? 조금 그런 생각을 했다. 

 

 

PS.) 그리고 나보고 비틀거리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 줬다. 좀... 맞는 듯. 

Ps.2) 글쓰기모임에서 "불행할 때 글을 쓴다"는 말을 봤는데 조금... 맞는 말 같다. 요즘 기분이 다운되기도 하지만 우울하기보다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청년으로서의 불안감에 가까운 것으로, 한참 불행하다고 느끼며 자책할 때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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