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ER GAMES
1권 헝거게임은 도입부, 여주인공 개인이 어떻게 힘든 역경을 헤치고 이겨내는지를 다루고
2권 캣칭파이어는 결말을 위한 과도기, 개인에서 집단으로 사고의 중심이 옮아가는 단계이고.
3권 모킹제이는 여주인공의 행보가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이 헝거게임의 세계는 우울한 디스토피아다.
까마득한 미래세계 판엠은 하나의 수도 캐피톨과 12개의 구역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철저한 독재정치가 펼쳐지고 있다. 캐피톨(capital의 변형이 아닐까 싶다)은 같은 나라라는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질만큼 다른 12개의 구역들에 가혹한 식민지배를 한다. 그에 따라 수도 캐피톨은 기이할 정도로 사치스럽게 살아가며 그에 반비례하여 구역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을 것이 부족하다.
그러나 가장 비인간적인 것은,
12개의 구역에서 1년마다 남, 여 두명의 청소년을 뽑아 서로 죽고 죽이게 하여 한명만 남기는 것이다.
이 잔인한 경기는 지배를 견디다 못해 일어난 구역의 반란이 진압된 후 구역들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시작되었다고 하나, 이 시점에 이르러 캐피톨은 잔인한 배틀로얄을 비즈니스 유흥산업으로 대하기에 이른다. 캐피톨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소년소녀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남을 죽인다. 팍팍한 세상속에서 인간은 누구보다 이기적이어야만 했다. 열 두 구역의 사람들은 이 구조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확률적으로 자신이 걸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May the odds be ever in your favor! 확률의 신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 어쨌든 안걸렸으면 좋겠네) 누구나 자신이 아니길 바라면서 우연적으로 결정된 소년소녀들을 보내고 소년소녀들은 자신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주인공 캣니스는 달랐다. 캣니스는 소중히 키워온 동생을 위하여 그 경기에 제물로 자원하게 된다. 경기중에 만난 소녀 루에게도 진실된 동맹으로 대했으며, 그녀가 죽은 후 진심어린 애도를 보였다. 캣니스는 빛바랜 세계의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았으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으며 그로 인해 의도치않게 그녀는 영웅이 되었다. 그녀는 강인하고, 비정하면서도 소중한 사람들에 대할 때는 인간성을 잃지 않은 면모를 보여 생존과 인간성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는 다른 사람들의 영향이 존재했다. 책에서는 캣니스의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가 풍부한 편이고 특히 1권에서는 주인공이 희대의 로맨스를 연기하려고 하며 이 계획이 잘 풀리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자주 흘러나오는 데 반해, 영화에서는 그보다 잔인한 디스토피아적 면모와 그에 대항하는 캣니스의 존재에 조금 더 중심을 두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중요한 디테일을 잘 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캣니스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존재인 동생 프림로즈, 캣니스에게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약속하는 피타의 존재가 작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캣니스는 사실 이 험악한 세상에 훌륭히 적응한 강철의 여인이다. 사냥도 잘 하고, 동물도 잘 잡고, 사람도 잡는다. 감성이 존재하지만 필요에 의해 이성으로 누를 수 있는 여전사다. 만일 캣니스에게 동생 프림로즈 에버딘과 피타 멜라크가 없었다면 그녀는 그냥 판엠의 강자, 에서 그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판엠에 지배적인 폭력과 약육강식의 논리에 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캣니스의 마지막 인간적인 면모를 자극하는 것이 동생 프림로즈와 빵집아들 피타였다. 동생 프림로즈는 작은 염소하나의 생명도 소중히 하는 천성이 여린 아이였고 빵집의 피타는 아무 이유 없이 힘든 시절의 캣니스를 도와준 은인이었다. 특히, 피타는 어린시절의 캣니스에게도 한번이지만 이유없는 호의를 베푼적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 오랜시간 함께 해야 했으며 스스로보다 캣니스를 더 위하는 사람이었다. 피타는 또한 유한 성격을 가지고 디스토피아적이지 않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언급해 보자면 피타는 1권에서 헝거게임 참가 직전에,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로서 죽을 수 있을까, 를 고민한 엄청난 인물이다. 실제로 1권에서는 목숨을 걸고 캣니스를 지켰고 마지막에는 그녀 혼자라도 살게 하기 위해 진심으로 죽으려고까지 한다. 2권에서 캣니스의 생각을 들어보면, 헝거게임 우승자 중에서 가장 고결(?)한 사람은 피타다. 비폭력 불복종의 간디와도 같은 피타의 태도는 분명 캣니스가 디스토피아에 매이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의 반란을 성공시켜도 결국 또다른 꼬리칸이 생길 뿐이므로 열차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여기서도 벌어졌을 때 캣니스는 반란이 성공하고 스노우를 감금하고 새로운 헝거게임을 제시하는 반군의 우두머리를 제지하여 무의미하게 권력의 주인만 바뀌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3권에서, 게일과 피타가 하는 이야기 중에, '캣니스는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고를거야.' 하는 말을 한다. 한참 피타는 미쳐돌아가고 게일은 캣니스에게 어필하는 그런 상황에 나타난 대사에서 나는 문득, 그런생각을 했다. 캣니스는 큰 야망으로 큰 일에 뛰어든 사람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 투쟁하는 게일과 평화의 피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결과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1권에서는 그저 로맨스려니 했던 것들이 3권까지 가자 다른 상징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스토피아를 뒤엎으려는 투쟁은 어쩌면, 디스토피아를 영원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정말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애, 가족에의 애정, 사랑, 배려, 헌신같은 디스토피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 이기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모킹제이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