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POTTER/친세대
The Lunar.
Episode 1. 늪에 빠진 달
어느 날 갑자기, 라는 것은 삶도 죽음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나에게는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많은 것들은 항상 나의 삶을 근본적인 부분에서 뒤틀곤 했던 것이다. 세 번째로 맞이하는 이 갑작스러운 일은, 오히려 조금 소소한 것일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발견한 조금 고풍스러운 편지와 풀색의 휘갈긴 글씨체와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의 기차는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갑작스러움’이었다. 나는 흥분한 채로 날뛰는 아이들을 앞서 보낸 뒤 한산한 뒷부분에서 느긋하게 발걸음을 떼며 뜬금없이 나타나 제 멋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어른이 말해준, 얼마 되지 않지만 나에게는 전부인 정보들을 다시 떠올렸다. 눈 앞에 자리한 끝없이 높은 성이 머릿속 깊이 박혀 들어왔다.
성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역시 한 번 경험하는 것이 골백번 듣는 것보다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정말 성이었다. CASTLE.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마치 문을 열면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기사들이 열을 지어 서 있고 길의 끝에 인자한 왕과 아름다운 공주가 있을 것만 같은 성이 아니라, 문을 열면 박쥐가 날아오르고 사람들의 발소리와 동시에 그 안의 관 뚜껑이 스르르 열리고 창백한 미남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성이었다.
굳건히 닫힌 문은 내가 발 디디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생겼다. 그 문이 세계의 말을 대신하는 것 같아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코가 높은 여자의 앞에서 크고 육중한 문이 거칠게 긁히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옆에서 많은 아이들이 술렁였다. 간간히 나에게도 누군가 말을 걸어와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나는 새로운 세계로 이렇게 떠밀려 가고 있구나.
한숨처럼 떠오르는 말들을 머리 한 켠에 밀어놓고 들어가자 엄청난 크기의 연회장이 있었다. 기다란 테이블이 네 개. 테이블 마다 교복 입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테이블 위에 몇 개씩, 벽면에 몇 개씩 밝은 빛을 내는 큰 촛불들이 환하게 밝히고 있었는데, 어쩐지 어둡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장을 보았더니, 천장에는 끝없는 우주가 있었다.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우리와 가장 먼 방향의 연회장 가장 끝에는 수염이 엄청나게 풍성한 할아버지가 뿔 모양의 큰 별이 듬성듬성 박힌 모자를 쓰고서 웃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상당히 큰 모자가 있었다. 명실상부한 마녀의 모자였다. 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끝부분이 접힌 마녀의 모자는 언뜻 보기에도 엄청나게 낡았다. 문득 옆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미 저 앞에 거의 자리잡아가는 사람들을 찾았다. 재빨리 발을 놀려 선두의 여자를 따라갔다.
나는 아직 아니었는데 신입생들이 어느 정도 연회장에 자리를 잡았다 싶었는지, 때 묻고 여러 군데 기워진 마녀의 모자의 앞면이 갑자기 길게 찢어지며 벌어졌다. 여전히 앞으로 발을 내딛던 나는 흠칫 몸을 떨면서 멈추었다.
길게 찢어진 부분을 입으로 삼아 모자는 노래했다. 호그와트의 창시자들과 신입생들에 대해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에 신입생이 배정되는 기숙사는 네 개이며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던 것 같은데, 노래가 쓸데없이 길었다. 노래를 잘하는 편이었거나 가락이 좋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순식간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졌다.
“저 찢어진 부분이 입이야? 그럼 밥도 그 곳으로 먹는 건가?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야 하는 거야? 먹은 건 어디로 나오는 거야?”
누군가 뒤에서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주변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그 말로 시작 된 시답잖은 수다들을 끊어내듯 모자는 노래를 끝냈다. 교수가 양피지를 몇 장 꺼내더니 두 손으로 들고 하나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름을 불린 아이는 아리엘 애플 이었는데 -A.A의 힘인 것 같다- 무척이나 쭈뼛쭈뼛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단상위로 나아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탓에 양 갈래로 묶은 머리가 팔랑팔랑 흔들렸다. 다행히도 나쁜 의미는 아니었는지, 교수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그 아이에게 차근차근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모자를 쓰라고 했다. 겁이 많은 아이는 한시름 놓은 듯 자리에 앉아 모자를 썼다. 모자에서 먼지가 훅 날았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모자가 다시 벌어지면서 “후플푸프-”라고 외쳤다. 아까 들은 노래대로라면, 그것은 기숙사의 이름이었다-
상당히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모자가 아이들을 기숙사에 배치하는 모양이다. 모자는 상당히 유능했다. 아이들을 배정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저 모자가 우리의 소중한 7년을 보낼 곳을 임의로 정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베이커, 에젤린!”
다행히 내 이름은 빨리 불렸다. 자세히 듣고 있으니 성의 알파벳순서대로 불리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흔하디 흔한 내 이름에 감사했다. 베이커, 앞에서 두 번째인 B로 시작하는! 빨리 앉을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본 많은 ‘마법적인’ 것들을 보면서 느낀 거지만, 마법에 대해서는 그냥 편안히 받아들이는 게 답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거다. 가볍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모자를 푹 눌러썼다. 모자는 생각보다 더욱 낡아 있었고, 자칫 잘못 잡아당기면 찢어질 것처럼 헤져있는 상태였다. 돈도 시간도 능력도 많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두나 싶어 저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 이 정도면 충분히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이야!!! 무례한 상상은 하지 말도록!!
앉자마자 아까 노래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 혼자 펄쩍 뛸 만큼 깜짝 놀랐다. 속이 비어 있으니까, 입으로 말하는 게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할 수도 있는가 보다.
목소리는 대답 없는 나를 두고서 한참을 낡았다는 말로 다 수식할 수 없는 ‘전통’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 나는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 같은 것이다!!! 함부로 말하지마!!!”- 나는 내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모자가 쉴새 없이 홀로 답변하고 있는 것을 보며 생각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빨리 벗고 일어나 어디로든 가 앉고만 싶었다. 모자는 투덜거리더니 점점 말 수를 줄인 후 고풍스러운 말투와 차분한 톤으로 되돌아 왔다.
-루나는 슬리데린이다.
모자가 진정하고 내 뱉은 말은 한 마디였다. 생소한 느낌이었다. 미들네임으로 불린다는 건. 내 이름은 Ezeline Lunar Baker. 어머니의 이름을 따 ‘루나’를 이름에 넣었으나,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이건 또 이상한 일이구나.
이렇게 반응이 없다니. 모자가 얼떨떨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사실 여전히 깃털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현실감에, 나는 그저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돌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멍하게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떠올리다가 나는 내 귀 안쪽이 아니라 저 멀리서 울리는 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슬리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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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는 나에게 슬리데린이라고 단정지었다. 슬리데린, 여기 연회장에 앉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곳이었다.
마법의 성으로 오는 길은 멀고 험난할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다들 기차를 타고 오는 것이다. 모든 호그와트 학생들은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3 승강장에서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탄다. 기차 칸 내부에는 대략 대 여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방들이 있다. 그저 기차역으로 찾아오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라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전 날 이미 충분히 자 둔 터라 졸리지도 않아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기차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저마다의 안녕을 외치고 있었다.
굳이 들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들렸다. 하지만 듣기만 했을 뿐, 다른 어떤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뇌 주변에서 말이 빙빙 돌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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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데린Slytherin. 야망 넘치는 재간꾼들의 모임. 나는 어째서 그 모자가 나를 이런 곳에 배정해 주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일찍 지쳐버려 이리저리 흘러 가는 대로 살아온 나는 슬리데린의 이상적인 학생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야망이라는 것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상당히 붕 뜬 상태로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을 뿐이다.
“-앗차, 에젤린 너 또 뒤에서 뭐 하는 거야! 빨리 와!”
“매번 늦는구나?”
“잠시만 기다려줘-!“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이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이 말하는 언어가, 몸짓이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것이어서 가끔 나는 그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채우고 있는다. 맞은 편의 아이가 입을 쭉 내민다. 미간이 모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다른 아이들은 나의 존재를 잊은 듯 저들끼리 여러 말을 주고받으며 깔깔댄다. 이런 하루의 끝을 나는 알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저들끼리 나를 뒤에 두고 먼저 앞서나간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앞서나가던 아이들이 나를 찾아 뒤돌아보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나와 그 아이들의 거리는 멀어진다.
유명한 순수혈통아이들이 이미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것과는 달리 전국단위로 모집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는 사람이 없기에 주로 자기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 즉 학기 초 배정된 기숙사 방의 룸메이트들끼리 함께 다니게 마련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아는 사람은 같은 방에 배정받은 아이들뿐이었다. 아만다 노트, 알렉산드라 래스트랭, 애쉴리 융. 하지만 세 명 다 유명한 순수혈통 출신인 듯 보였다. 방을 배정받은 후 이름표를 보고는 서로 마주보고 웃음 짓는 것을 보니 그 중 두 명은 이미 상당히 친한 상태인 것 같았다. 다른 한 명은 어떨까 했지만 나머지 한 명, 알렉산드라 래스트랭은 성격도 얼굴도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마저도 전부 귀족적이었다. 우리 방에서 가장 슬리데린다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드라다. 다행히도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분위기메이커 아만다 노트는 꽤 품이 넓은 편이어서 어찌어찌 문제없이 지내고는 있지만.
아만다때문인지 그 아이들은 상당히 템포가 빠르고 텐션이 높았다. 마치 고무줄처럼 죽죽 잘 늘어나고 잘 줄어들고 잘 튕겼다. 나는 그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면서 늘 흐릿하게 웃는 역할이었다. 그 아이들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깨달아야만 했다. 조금 이질적인 내가 그 사이에 끼여있음을. 이 온도 차를.
마법모자는 잔인했다. 내가 보통사람-즉, 머글- 출신이라는 건 마법모자는 한 번에 알 수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슬리데린에 어떤 아이들이 가는 지 정도는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 곳에 아이들을 보낸 건 바로 그였으니까. 그런데도 마법모자는 나를 슬리데린에 보냈다. 내가 루나라는 그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그러니까 그 우연적인 이유 하나로 내 다른 성격과, 능력들은 고려하지 않고 내가 7년을 보내야 할 슬리데린에 보낸 것이다.
사박사박 걷다가 거리가 다시 벌어진 사이에, 내가 올라가던 계단이 옆으로 빙글 돌았다. 맙소사.
“에젤린!!!”
이미 위층에 거의 다 도착했던 아이들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을 보자마자 중심을 잡느라 바빴다. 계단을 전부 오르지 않은 상태여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계단 위에 서 있는 일은 상당히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 중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만다가 재빨리 층위로 올라 중심을 잡은 후 내 이름을 불렀다. 물론 그만큼 잘 뛰지도 못하고 이제 막 계단을 올랐을 뿐인 나는 미끄러져 반 층 정도 아래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다행히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엉덩이 뼈가 찌르르 울리는 것이 아팠다. 부르는 말에 한참을 끙끙거리다 간신히 몇 마디 대답할 수 있었다.
“에젤린? 괜찮아????”
여전히 뼈가 울리는 것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물이 차오르는 한 쪽 눈을 감고 올려다보자 저 위에서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급히 몸을 웅크리느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아만다가 살풋 인상을 찡그린 것 같았다.
“ - ”
특별히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은 아닌데 어딘가 크게 잘못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무어라 아이들이 내는 소리가 주변을 맴돈다. 위에서 들리는 건지, 옆에서 들리는 건지, 아래에서 들리는 건지 알 수 가 없다. 발목 즈음에서 격통이 몰려왔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에젤린?! 병동에 가자!”
어느 새 어깨 위에 손이 올라가 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다리의 감각이 조금 돌아왔다. 그러고 나니 의외로 별 것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감각에 뒤따라 창피함이 몰아쳤다. 말을 하나 꺼내면 의미 모를 비명을 내지를 것 같아 간신히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거기 누구니?”
어깨에 놓인 손이 작게 떨렸다. 사람이 있는 줄 몰랐는데 신경 쓰지 않던 복도 한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나보다 좀 키가 큰 남학생이 있었다.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워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윤곽뿐이었다.
“슬리데린 신입생입니다만.”
일단 크기를 봐서는 선배일 것이 분명하였다.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한 문장 말을 하고서 아만다는 살피는 듯 여운을 남겼다.
“으엑- 뭐야 슬리데린이었어?!”
그 근방에서 다른 목소리가 하나 더 들려왔다. 복도에 웅웅 울리는 목소리는 꽤 높고, 우렁차고 빨랐는데도 나는 그 안에서 미약한 적의를 느꼈다. 생각보다 슬리데린은 나쁘지 않았기에 잊고 있었던 기차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실이었던 걸까?
“망할 슬리데린 꼬맹이가 왜 여기서 얼쩡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대놓고 기분 나쁜 티가 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꽤 매끄럽지만 낮은 목소리는 상당히 거칠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겁을 집어먹었다.
“시끄러워. 애가 놀랐잖아.”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야 너희들 때문이지.”
“이런 매정한 친구를 봤나! 아니지, 아니야. 다 건방진 슬리데린 때문이라고. 먼저 시비 건 쪽은 그쪽이란 말일세, 안 그런가, 패드풋?”
“크큭, 맞아 내가 하고 싶던 말이 그거였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 지면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명쯤이었다. 내가 떨어진 곳 앞에는 유리로 된 방이 있었는데, 그 안에 주저 앉아서 뭔가 하는 것 같았다. 저들끼리 무어라 서로 내뱉는 어투가 퍽 친근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자주 대화에 등장하는 슬리데린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에 들어간 강세로 그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말하는 투나 하던 일을 그만둔 점이나 여러 가지를 보지 않더라도 나에게 뭔가 해가 될 것 같다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얘들아, 문제를 더 키우지 말자. 너희는 지금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하지 않니?”
“아, 에젤린이 계단에서 떨어져서요. 아픈 것 같아 병동에 데려다 주려는 중입니다.”
“그거 걱정이네. 병동이 어딘 지는 아니? 도와줄까?”
“ 병동의 위치는 알지만 아무래도 저 혼자는 힘들 것 같네요. 부축을 좀 도와주시겠어요.”
제일 먼저 누구냐고 물어본 사람이 나와서는 그들을 가렸다. 그리고 눈을 맞추고 차분하게 조곤조곤 말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튀어 나온 모든 것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가자.”
빛 아래로 나온 그의 넥타이는 노랑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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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병동이니, 병동을 담당하는 부인이 가볍게 타박했다. 난 그 시점에서 학교의 계단이 난폭하게 이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겪는 마법세계란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거칠게 다가왔다. 머글 출신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너무나 잘 지낸다. 마치 자기 집 인 것처럼 편하게 많은 마법적인 것들을 지나치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내가 모자란 것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나는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계단이 오늘은 좀 마구잡이로 이동하더라고요. 부인, 그거 건의 좀 해 줘요. 잘 못하면 크게 다칠 뻔 했는걸요?”
뭔가를 내 발목에 바르고 있는 부인을 보며 아만다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말하는 어투는 항의하는 어조인데도 생글생글 웃고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 그랬니? 의외로구나, 웬만해서는 계단 때문에 부상자가 생길 정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데.”
부인이 이번에는 조금 짧고 뭉툭한 지팡이로 발목을 쿡쿡 찔렀다.
“페룰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마치 한 번에 나아버린 것 같았다. 부인은 간단히 고정시킨 것이라며 뼈는 붙었지만 두어 시간 정도 쉬라고 했다. 옆자리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음, 저기 아만다? 고마워..”
어째 큰 사고를 친 기분이라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나마 나는 꽤 조용하고 침착한 편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쌓아온 내 이미지에 미안할 지경이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아만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물론 슬쩍 감은 눈이라거나, 치켜 올라간 턱이라거나 보고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 표정을 보자 조금 더 아만다와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활기차지만 수업은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듣는 아만다가 이렇게 수업까지 빠져가며 나와 함께 병동에 있어주는 걸 보면, 아만다도 사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한 잔 마신 것처럼 속이 따뜻해져 왔다.
“헤헤”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이렇게 풀어져 보는 것 같다. 실실 웃고 있는 날 보고서 아만다가 조금 이상한 걸 본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를 뒤로 끌었지만 뭐 어떠랴, 이런 해괴한 세상에도 내가 있을 자리가 자그맣게나마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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