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펜 소리 들리는 밤.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도 나는 나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잘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배를 빵빵하게 만들었다. 달고 짠 안동찜닭에 순수 모짜렐라 치즈가 사이사이 빈틈 없이 내려앉았다. 마침 닭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 밤을 보낸 탓에 생각보다 좀 더 먹고 말았다. 배는 부르고 다리는 느려지고 카드는 삐쩍 말라버렸지만 그래도 좋다. 오늘은 사실 쉬는 날이니까. 오늘도 고생하자, 배를 통통 두드렸다. 읽지도 않았는데 허삼관 매혈기가 생각나는 소소한 상품권을 꺼냈다. 당연히 하루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커피 한 잔이 필수다. 보기 좋게 콘센트들이 늘어선 넓은 테이블을 하나 가득 차지했다. 사람 없는 연휴의 점심, 웃는 소리가 층을 울려도 그 누구 하나 눈살 찌푸리는 이가 없다.
나를 똑똑하게 하는 이야기를 했다. 말 하는 훈련을 시켜주는 생각 많은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내가 닿고 싶어하는 주제를 꺼낸다.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 꼬랑지마저 보이지 않을 무렵 시계를 보니 정말 우리는 오래 이야기를 했다. 사실 시간이 없다며 괜히 투덜투덜 입을 삐죽여본다. 하지만 좋은 한국어 회화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학교를 안 다녔더니 말을 할 기회가 너무 없다. 표현이 어눌하고 자꾸 눈동자를 굴리는 몹시 어수룩한 나지만 어쨌든 말을 조리있게, 천천히, 논리적으로 하는 연습은 중요한 것 같다. 토론 스터디라도 해야 하는걸까 했던 걱정이 조금 사라졌다. 사실 아주 급한 건 아니니까.
연휴는 꽤 길다. 연휴가 끝나면 쉬지도 못하고 몰아치는 벅찬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4일, 그 중에서 쓰지 못하는 시간을 제하면 2일이 남는다. 이틀동안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면 가장 만족스러울까 고민하는 사이 볼펜이 미끄러진다. 괜히 얼굴 책을 펴서 여기저길 뒤적여보는데,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그저 써 보겠다는 친구가 보였다. 3줄남짓으로 일생의 웃긴 일들을 조각조각 나열하는데 정말 재미있다. 어머. 역시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이 많다. 뭔가 한 건 없는데 알차게 보낸 것 같은 하루나마 괜히 정리해 보려고 이렇게 컴퓨터를 열었다. 타박타박, 보이지 않는 펜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