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약 10개월 동안 상당히 온전치 못한 멘탈상태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메인 주제는 진로와 커리어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어쩌면 더 많은 고통을 내가 받고 있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과 달리 그것은 나에게는 미래(인생)라는 단어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대부분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대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유들로(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류의) 고난을 짊어졌다.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와 다른 환경에서 또 나와 다른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난 1년은 정말이지 외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목표가 있으면 아주 굳건한 사람이었지만, 아닌 경우에는 물보다 허술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한 번 아주 크게 혼나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의 정신을 의탁할 굳건한 말뚝을 찾아 헤맸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모든 변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사랑받으려면 끝없이 을이 되어 매 순간 순간 눈치를 보며 맞춰야 하는 사람관계가 아니라 (이렇게 쓰고보니 인간불신 같지만.. 맞다 인간불신이다. ) 내가 무언가를 해서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서, 내 정체성과 자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내가 접할 수 있는 것은 학업과 성취 뿐이었고, 그게 가장 효율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꽤 성과지향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마치 1등을 쟁취하고 타인을 찍어누르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무언가에 몰두하고, 사소한 재미를 찾고, 꾸준히 나를 발전시키는 데서 기쁨을 느꼈으며 XX과목을 좋아하는 사람, XX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나를 끊임없이 정체화했던 것 같다.
-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 내용은 대학 진학 후에도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넓은 가능성에 파묻혀 기쁘게 헤맸고, 더 비효율적인 사랑을 찾아 다녔다. 문제는, 졸업 이후였다.
세상은 생각보다 과격하다. 취업이나 회사 같은 주제의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회사는 학교가 아니야, 라는 말이 따라붙기도 하던 시절, 어쨌든 남의 돈을 받아내려면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하고, 직원은 대개 을이기 때문에 갑인 회사와 조직이 원하고 의도하는 대로 골수까지 빨아먹혀야 한다. 취미도 직업으로 갖게 되면 정이 떨어진다고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철저히 자본주의적이고 효율주의적인 태도를 갖는다. 자기가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 자신의 가치를 가장 많이 인정하여 물리적으로 보상해주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일을 사랑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잘 해낸다. 그리고 감정이 없이 필요한 만큼 요구되는 만큼만 하는 것이 프로다운 태도로 칭송받는다. 실제로 리스크관리적인 측면에서 감정이 끼이지 않는 업무처리가 가장 편하기도 하고.
나는, 너무 좋지 않고 맞지 않는 곳에 갇혀 버렸다.
이야기를 하면 슬슬 이쯤 되면 친구들이 퇴사를 말리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지금 썩어 들어 가고 있다. 작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태로 정이 떨어질대로 떨어지고 멘탈도 부서질대로 부서져버려 자신감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 마저 잃어버렸다. 주변 동기들이 전부 퇴사하거나 이직했고, 퇴사러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나는 작년 부터 진짜 진지하게, 농담이 아니라 퇴사를 하고싶다가 아니라 하겠다고 말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다시 지금, 나는 부서로 이동당한 지 곧 10개월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으며, 퇴사를 하지도 못하고 이직준비를 하지도 않는 상태로 홀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냥 매일 24시간 대기조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전전긍증하고 매일 밤 당직을 서면서 모니터링하고, 야근에 시달리면서 00시에 집에 들어가고, 문제가 터져서 밤 10시에 얼굴도 모르는 팀장님한테 전화해서 울먹이던 때가 스트레스는 덜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어떤 이과의 문장으로 말하자면 나는 FJ이며, 결정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야 하는데 현재 감정(혹은 신념)이 이끄는 방향이 부재하여 이성만으로 극단적인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특성이 과하게 발휘되고 있는게 아닌가 한다.
문학적인 문장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지금 내 안에 사랑이 모조리 불타 없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문제를 느끼고 나와 비슷한 정도로 회사와 직장과 조직에 실망한 사람들은 지금 이미 다 이동을 했다. 절치부심하여 3~6개월 동안 준비했고, 후련하게 떠났다. 그들은 극한의 분노를 연료로 삼아 밤이고 새벽이고 자기소개서를 썼으며, 시간을 쪼개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 모든 과정을 나는 지켜봤고, 어떻게 하는지도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물론 지금도) 자책을 많이 했더랬다. 얼마나 사람이 나태하고 게을렀으면 이렇게 극한의 고통을 겪고도 뒤돌아 헤실거리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수동적으로 반항하면서 대충 살고, 그를 통해 내 인생의 가치마저 깎아내리고 있을까.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미 해낸 일을 왜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내가 왜 이렇게 궁둥이을 붙이고 일어나지 못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사랑이 모자라.
GIVE LOVE~ 사랑이 부족해요~! 여태 나는 합리와 이성과 필요에 의해 결정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마치 머리가 떠들고 있는데 그와 별개로 몸이 무시하는 듯한, 자아가 둘로 나눠진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 했다. 기분 나쁨을 치료할 달달한 디저트나 시간 혹은 어떠한 자극을 꾸준히 내가 나에게 주면서 내가 나를 달래면서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꽤 그런 것 같다. 작년에 멘탈이 아주 나가 있었을 때에는 하고 싶은게 아예 없었고 분노와 슬픔만 남아 추스르기 바빴으며, 분노를 연료로 삼아 튀어나가지 못했다. 반 년 쯤 지났을 때에는 내가 번아웃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때마침 우연히 시작한 모바일게임에 정을 붙여 내가 가진 티끌만한 사랑을 전부 거기에 쏟아 부었다. (내새끼들~!) 그리고 이제 10개월 차, 멘탈도 슬슬 수복되고 회사도 혼란한 상황이 많이 가셨으며(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퇴사소리는 나를 채찍질한다) 이정도면 꽤 많이 쉬었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든다. 뭔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지금 내가 일어나 서 있어도, 망망대해에 그저 떠다니는 것 뿐으로, 아직 어디에 가야할 지 모르겠다. 대개 살아감에 있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분지족하거나, 최고의 효율과 효과를 찾으면서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하거나. 나는 지금 안타깝게도 아직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고, 어디가 나에게 가장 후회없을 좋은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보니 한 달에 한번 꼴로 사람이 드나드는 소소한 조직개편이 이루어지고, 분기별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이루어지며 정책이 바람잘 날 없는 이 회사의 몹쓸 과도한 변동성이 내 인생을 망친 것 같긴 하다.)
친구들처럼 나도 분노로, 그저 탈출을 위한 탈출을 위해 절실하게 몸부림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 내 상황이 목숨에는 문제가 없고 몸이 편안한 직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이전의 심리검사를 하기까지했던 바쁜 팀에서의 일을 생각해보면 그냥 나는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분노의 역치가 대단히 높고, 어지간한 문제는 전부 버티고, 간단히 기대를 버림으로서 적응해버리는 존버맨인 것이다. ... 안타깝게도 나를 움직이는 것은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긴 평소에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안정된 상태일 때, 무언가가 너무 좋아서 어쩔줄을 모를 때, X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 때 폭발적인 파괴력을 내는 사람으로, 적당히 괜찮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감정에 극과 극만 존재하는 감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렇다. 게다가 내향형이기 까지 해서, 의욕이 없는 경우에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디렉팅이 없으면 몹시 소극적으로 변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결론...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없고, 뭔가 지금 상황에서 타개할 모든 선택지가 전부 썩은 동앗줄이라는 것을 발견해서 이성적으로 내부이동도 어려운 상황에 빠진 나는 그냥 갇혀있는 것 같다.
모두의 인생이 이렇게 부침이 가득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많은 것들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또 이렇게 약 10여년 전의 혼란했던 우울증주간과 유사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동시에 겪고 있다. 아 이렇게 내가 사랑으로 사는 사람인 줄 몰랐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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