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부터 시작한 상담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보다는 얼마 되지 않았구나? 여튼.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 거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꽤 별 거이기도 했다. 상담사님은 사람을 파악하실 줄 아는 분이셨다. 나는 스스로 엄격하게 검열하다 저 너머로 사라진 감정들을 토해 놓을 곳을 찾았고, 그를 통해서 내가 외면한 나를 조금씩 주워올릴 수 있었다. 어차피 짊어질 짐, 좀 더 든든히 짊어질 수 있도록 신체를 움직여 생각을 돌려내는 법을 배웠다. INFJ는 상담에 굉장히 가까운 유형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진짜 맞는 것 같다. 가격이 좀 있어서 부담스럽지만 않았어도, 내가 조금만 더 부유한 사람이었어도 나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정기검진 받듯이 꾸준히 다녔을 것 같다. 건강 및 헬스 관련 비용을 여기 올인한 것을 고려하면 과연 가성비가 좋은가? 돈 값을 했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지만, 어쨌든 나의 변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다행이다.
그리고 이번 주의 깨달음! 선생님이 나는 아직 푹 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쉬어서 에너지 충전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삶을 살면서 재택근무를 한 덕분에 컨디션이 좋은 날이 몇 일씩 있어서 이 정도면 빨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구 불안해 했더니 해주신 말씀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번아웃을 탈출하는건 적당히 쉬었을 때가 아니라, 너무 쉬어서 아 이제 뭔가 해야겠는데? 싶을 때"라고 하는 걸 본 기억이 났다.
어쩌면 언젠가의 나는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정말로 거의 6년을 쉼 없이 주 6~7일 근무하면서 밤을 새는 게 일상인 친구가 있어서 나 정도면 엄청나게 널널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보면 나는 언제나 극히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 하면서 조금씩 회피했을 뿐 정말로 만족스럽게 편히 쉬어본 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이 번아웃을 치료중인 과정인걸까 싶기도 하다. 사실 아직 넘치게 쉬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다만 주변과 내일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긴 것 뿐이지. 찬찬히 쉬면서 내가 외면하고 눈 감아왔던 것들을 다시 마주하고 조금씩 다시 쌓아올려서, 좀 더 멘탈이 건강한 내가 되어야 겠다.
옛날에는 내가 가진 커다란 문제를 해결해야만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문제들은 평생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면서 시간의 힘으로 흐리게 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결국 이 심리와 성격과 과거와 기억에 관련한 문제들은 한 번에 해결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문제를 이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을 키우는 것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상처와 고통을 안은 당사자는 원인보다는 과정과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 좋고, 그 당사자를 위해 주변사람과 사회는 원인에 집중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베스트니까. 조금 운명론자같은 생각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났고, 뒤집거나 회귀할 수 없으니 그저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내가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가 내 시작점이겠거니 하고 살아나가야만 한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구경하고 더 많이 행복해져야지. 현재를 살고 미래를 찍으면서.
그리고 또 생각한 게, 긍정적인 나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거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는 내가 참 싫었다. 5~6년쯤 전이 아주 피크였는데, 당시엔 나는 아주 쓸 데 없는 그런 무가치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서 완전히 다른 내가 되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스스로를 부정하려고 이름을 바꾸자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
하지만 지금 내 인생의 암흑기가 오고 멘탈이 흐느적거리게 된 이유와 해결법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더 인생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 많은 방법들을 강구해 왔다.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매일 일기를 쓰고, 주 단위로 계획하고 반기 단위로 목표를 세우면서 항상 내가 생각한 길 위에서 나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나는 그렇게 만들어 졌다. 그를 통해 나는 언제나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었고, 막막한 현실에서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내 성격과 가치관을 생각해보면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방식이었고 내가 생긴대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누군가가 시키거나 억압한 결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내가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만들어낸 나의 길이었다. 함부로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기나긴 취업준비 기간동안 정말 많이 실패하고 자신감은 마이너스대로 떨어지면서 행복하게 보냈던 짧은 시간과 자유를 후회한 적도 많았다. 이렇게 살았으면 안 된다고, 내 삶을 부정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하루살이처럼 꽤 솔직하게 살았던 나는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의외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는 실패나 실수에 대해서 크게 상처받지도 않았다. 이상주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나는 언제나 내가 절대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항상 더 나아지고자 했고, 그 결과 죽기 전까지는 완성이라는 게 없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성격은 내 커리어패스가 삼도천을 건너는 시점에 꾸역꾸역 버틴 장점이자 단점으로 이어졌다. 완전히 좋은 요소인가? 하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용기라는 덕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역시, 나를 되찾아야겠다. 더 든든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설 수 있도록, 무거운 공기를 지고도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