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정말 뱀장어같다. 

 

어떤 날은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짜릿짜릿한 전기뱀장어는 특별한 일 없이도 홀로 출렁이며 오만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이토록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라는 걸 온 몸으로 느끼며 얽힌 실을 풀듯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있으면 이것도 꽤 즐겁다. 마치 퍼즐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나와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기분이다.

 

어떤 날은 꽤 두렵다. 나름 꽤 오랫동안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도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이나 흘러가는 것은 여전히 내 통제 하에 있지 않아서 어떤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오는 것 같다. 이후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 예측한다 하더라도 그저 결말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 어떤 작은 종말 직후에 눈을 뜰 수도 있다는 가능성... 기분이 끝내주게 좋다가도 문득 이것은 떨어지기 직전 가장 높은 고도에 다다른 롤러코스터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절반 이하의 낮은 확률로 발생할 부정적인 일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떤 날은 화가 난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많은 감정들을 애써 잡아보아도 손 틈새로 지나가버리 일쑤. 감정에 충실했다간 몇 초 지나지도 않아 후회하며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반복되고, 감정을 무조건 참고 억눌러 조용한 집에서 다시 펴 보면 이미 그 감정에 관련된 모든 일들은 대체로 끝난 상태라 내가 미워진다. 단순한 일에 대해 단순히 반응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제 써 둔 '감정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는 글에다  '어떤 날은 꽤 두렵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사는 걸까, 내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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