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년 소위 MZ세대에게 MBTI 광풍이 불었다. 정확히 말하면 쉽고 간편한 MBTI는 오랜만에 SNS의 트렌드를 타고 다시 날아올랐다. 

 

애초에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가볍게 갖고 놀 수 있어야 하니까, MBTI가 진짜로 활용되어야 하는 방향과 그 가치에서 조금 벗어나 온갖 밈에 절여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16가지 유형에 우겨넣어 저 좋을대로 납작하게 해석하는 것도, 그것이 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면 괜찮다. MBTI를 핑계로 친구와 한 마디라도 더 해보고 조금이라도 주변 사람과 낄낄거릴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MBTI를 기반으로 누군가를 저평가하거나, 차별하거나, 구별지어 외면하는 건 그냥 봐 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더 신나게 더 즐겁게 살아가는 데에 집중하다보니 저지르는 작은 무관심은 이해할 수 있어도, 누군가를 슬프고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몰이해는 용납할 수 없다. 인간이란 쉼 없이 누군가를 구별짓고, 유형을 나누며, 당연하다는 듯이 순위로 줄을 세우려고 하는 존재라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더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세상에는 하나가 아니라, 수 없이 많은 랭킹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 만난 친구 둘은 MBTI를 검사하면 끝자리가 P로 끝나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MBTI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꽤 괜찮은 객관적인 성취를 해 나가고 있었고, 회사에서도 자신의 삶에서도 꽤 잘 적응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은 P가 아니지 않을까, 하면서 검사결과에 의문을 갖고 있기도 했고, 자신은 회사에서는 더 잘 적응하기 위해 J인척 새로운 자신을 꺼낸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MBTI의 네 글자를 각각 떠올리면서 자신이 맞나? 하고 돌아가면서 하나씩 이야기 하면서 다들 자신도 모르게 P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싸 했다. 외향형/내향형인 E/I는 단순히 인싸/아싸의 구분과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시간이 좀 됐다. 오해가 많이 해소된 편이다. 현실형/직관형인 S/N은 솔직히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굉장히 어려우며 같은 축에 세워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이라 긍부정 평가가 생기기 어렵다. 이성형/감정형인 T/F는 서로의 표현 법이 너무나 다른 점이 티가 나서인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수준이다. MBTI의 이상적인 활용사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판단형/인식형 J/P를 보자.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특성인 탓에 정확히 이 특성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적다. 사실 나도 아직도 이 특성의 차이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같은 축으로 비교하기가 너무 쉬운 밈이 있다. 덕분에 정리를 하지 않고, 계획을 세우지 않음/ 계획을 세움으로 단순하게 이해되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떤 결과까지 일어났나. 사람을 뽑는데 FP는 뽑지 않겠다는 말을 써 둔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독하는 커리어/취업관련 유투버는 대놓고 'INFP가 직장에서 살아남는 방법' 따위의 제목을 걸어대고 있다. 이런저런 도장찍기에 소중히 아끼는 P들이 의기소침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방을 어지르는 것이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인 게 아니니까.

 

P는 인식형이라고 한다. 변화에 유연한 점이 강점이다. 그들은 항상 정보에 열려있고, 항상 준비하며, 항상 자잘한 결정들을 스스로 내린다. 그러면서도 이 결정이 영속적이지 않다는 걸, 환경이 바뀌면 얼마든지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언제나 몸이 가볍고 자유로운 점이 나는 항상 부러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회적인 환경에도 쉽게 적응한다. 자신과 다른 타인의 존재와 의견에 대해 쉽게 튕겨내지 않는 것 같다. 가끔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한 것 처럼 보이는 그들이 나는 굉장히 열려있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그들도 밈에 휩쓸려 자신을 한정짓지 않고 더 많은 장점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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