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뭘까 왠지 모르겠는데 일단 한 번 꼬아듣는 버릇이 있는 건지, 그 때는 어쨌든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서 행복회로를 돌리는 자기합리화를 해야한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실제로 힐링어쩌고 심리상담 어쩌고하는 곳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좋은 점에 집중하라는 말을 많이 하니까, 또 흔히 하던 그 말인가 했지. 

 

그런데 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오랜만에 친구가 놀러 왔다. 서울나들이를 온 친구는 서울에서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소화해 낼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공연과 전시회를 예매해댔다. 나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 친구의 서울여행이 알차고 후회없기를 바랬다. 그래서 열심히 동선을 짜고 시간계획을 해서 조금 빠듯하지만 그래도 가능할 것 같은 일정을 짰다. 

 

놀랍게도, 급히 짠 일정은 제대로 돌아갔다. 긴 연휴를 끼고 멀리 놀러 간 사람들 덕분에 정작 서울 내부는 꽤 한산했다. 평소였다면 줄이 길게 늘어졌을 맛집도 적당히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알고보니 무작위로 골랐던 전시회와 공연장은 걸어서 15분 거리였는데, 조금 바쁘게 걸었더니 10분 컷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자리가 없어 돌아나오지 않아도 됐다. 우리는 이게 될 줄 몰랐다를 연신 연호하면서 행복에 겨웠다. 온 세상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운이 좋은 날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깊이 조사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결정했던 탓에 이미 결제까지 한 전시회 오디오가이드를 듣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말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가방에 블루투스이어폰 하나만 넣었더라면 괜찮았을텐데 그 한 뼘의 준비가 부족해서 일이 꼬였다. 정확한 전시회장을 찾지 못해 길도 헤맸고, 여유 시간이 없는데 시간이 낭비되어 공연장에 지각할 뻔 했다. 이 때에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싫었고, 제대로 끝까지 준비하지 못한 내게 화가 났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한 잘못을 친구 앞에서 투덜거리다 친구의 기분까지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초조했지만 그냥 아무말 없이 일단 달렸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정에 집중했다. 걸음을 서두르자 공연장에는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불호표현이 드문 친구는 중간에 일정이 조금 꼬인 것보다 우리가 공연장에 무사히 도착하고, 화장실까지 갔다가 공연을 보러갈 수 있었던 사실과 공연의 내용에 집중해서 내내 대만족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공연에 만족한 나도 덩달아 '오늘 너무 좋다' '우리 너무 좋은 선택을 하고 있다' '오늘 모든게 너무 잘 되고 있다'를 외쳤다. 

 

그렇게 하루는 끝내주게 운이 따라줘서 모든 목표한 바를 다 잘 이뤄낸 완벽한 하루로 끝났다. 일정이 꼬인 그 순간에는 마치 지금까지의 완벽함에 큰 흠을 낸 것 같았다. 하루의 일정이 실패한 것 같았고,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연히 나는 그 흠이 아니라 그 하루의 최고였던 점에 집중했다. 그 외에도 뭔가 부족했던 점 아쉬웠던 점 분명히 있었고 기대보다 못한 점도, 내가 부족했던 점도 분명 있었는데 그냥 나는 오늘은 최고고, 운이 따라주기까지 해서 원하던 걸 다 이룬 하루라고 말했다. 나는 짜증이 아니라 기쁨을 그 하루의 대표감정으로 선택한 셈이다. 그랬더니 그날 밤에 자기 전에는 그냥 모든게 다 만족스러웠다. 

 

오늘에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행복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건가 하고. 결국 하루에는 언제나 좋은일과 짜증나는 일이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루의 대표감정을 좋음으로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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