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드라마가 뜨면서 신경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물 밖으로 나왔다. 뿐만아니라 오은영 박사님과 최근 트렌드로 인해 심리이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 같다. ADHD도 그와 같다. 단순히 굉장히 정신이 사나워 일상에 집중이 되지 않는 어린아이 정도의 인식을 가졌던 ADHD가 이제는 더 분화되어 다양하게 노출되고 있다. 

 

어쩌면 그런 흐름에 휩쓸려 단순히 '혹시 나도?'라고 생각하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용한 ADHD들은 전형적인 산만함과 다른 증상을 나타낸다고 해서 찾아보니 마침 나와 비슷한 것들이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성인 ADHD인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 부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 중학교 때는 그거 때문에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혼난 적도 있고, 그 해결책으로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삶에서 굉장히 많은 가지를 쳐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여러 문제들이 얽힌 것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 그리고 어릴 때 부터 과집중, 과몰입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특히 이야기에 빠지는 경우가 잦았고, 가끔은 수업이나 시험, 과제에도 빠지기도 했다. 몇 번은 쉬는 시간에 소설책을 읽다가 선생님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한참을 책만 본 적도 있다. 약속시간 직전에 뭘 하다가 출발시간을 놓쳐서 지각하는 건 일상다반사다. 과몰입 직후에는 마치 자다 깬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미친 메모와 계획에 빠졌다. 몰입을 하지 않으려고도 해 봤는데 그랬더니 너무 인생이 붕 뜬 상태로 아무 데도 집중이 안돼서 힘들었다. 그리고 보통 이 경우에 누군가가 문제있냐고 물어보더라. 교수님이나 팀장님이나 .... 누군가들에게 유의미하게 차이나게 텐션이 가라 앉는 듯하다. 동시에 최근에는 소음에도 예민해졌는데, 클락션소리나 갑자기 쾅소리가 난다던지 하는 것들을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종종 무언가의 디테일을 무의식 중에 넘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뭔가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순식간에 까먹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주로 작은 실수가 큰 문제를 일으키는 수학에서 문제가 많았다. 딱 한 문제 틀렸는데 그걸 >< 를 반대로 쓴 초등학교 때 일이나. 풀이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계산중에 암산하다가 2x6=48 처럼 구구단을 잘못 외워서 틀린 중고등학교 때 일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꼭 다 푼 후에도 극도의 긴장속에 두 세번 더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국어 같은 경우에는 [않은]을 못 보고 반대로 풀어서 틀린 경우도 있었다. 대체 어디서 뭘 잘못보는지 예측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꼭 모의고사 같은거 많이 해서 내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 다 쭉 체크하고 하나씩 다 고쳐야 했다. 뭐든 한번에 바로 하지를 못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특성이다. 이건 지금도 좀 그런 편인데, 뭘 할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한 번에 한 적이 없다. 

 

감정기복도 좀 큰 편인데, 별 것 아닌 사소한 일로 크게 상심하곤 한다. 어딘가 어긋난 것 같아서 요즘은 열심히 생각의 중심축을 다시 맞추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과잉행동은 없는 사람이다. 원래도 마구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 몸을 잘 못 가누는 편이라 신중하게 움직이는 습관이 배인 것도 있다. ADHD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니까 ADHD라고 하면 주의력의 부재, 집중력의 부재, 산만함, 이런 것들이 메인 증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나는 ADHD와는 굉장히 먼 사람이다. 어릴 때 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했던 나는 지극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부터 학습장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계획을 사랑하는 미친 통제광이기도 하다. 심할 때는 다이어리를 세 개씩 사용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주의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집이나 책상 정리도 잘하는 편이다. 주변이 정리가 안 된걸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내가 요즘 문제라고 느끼는 것들은 병이 아니라, 최근 주의력이 떨어졌다는 신호가 아닐까? 긴장을 많이 하고 그 탓에 쉽게 방전되고 매순간 집중하려 애쓰는 것이 너무 많은 힘을 쓰고 나를 지치게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삶과 일의 밸런스를 맞추는 연습의 일환으로 몸에서 힘 빼기를 연습하고 있다. 힘을 빼면 일상이 너무 아무것도 없이 그냥 흘러가 사라져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원래 이정도로 산다고 하니까 나도 좀 그렇게 살아보려고. 나에게 과도하게 엄격하게 군 나머지 당연히 이 때는 이만큼 집중해야해, 그것이 돈을 받는 것에 대한 예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한 예의야! 라고 생각하며 기준을 높여뒀지만 그렇게는 오래 못 살 것 같다. 

 

이게... 진짜라고? 다른 사람들도 힘을 빼고 이렇게 산다고? 일상은 어떻게 유지하는 거야?? 싶지만... 어쩌면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조금 더 나와 내 인생을 더 정리해보자. 항상 불어닥치는 변화의 바람에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중심을 세우고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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