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특별히 어떤 날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대개 개강 등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즌에 생일이 있었던 터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내가 태어남을 축하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난 주는 특히 추석과 가을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업무가 많았고, 나도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어 쭉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심 즈음 생일을 등록해 둔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고 친구들, 지인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한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냐, 고민은 해결 됐니, 다음에 한 번 보자... 생일을 핑계로 연락하고, 연락이 닿은 김에 이야기를 시작하며 카카오톡 친구창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따뜻한 시간 속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허물어졌다. 흐물흐물한 표정으로 스크럼을 위해 영상을 켰더니 친하게 지내던 팀원들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급한 일 없으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고 푹 쉬라고 해 줬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 날은 나를 최우선으로 둬도 됐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기쁨을 즐겼다. 아무튼 이게 행복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시험을 치러 갔다. 꽤 오랜시간 나의 평일저녁을 잡아먹으며 내게 고통을 준 운전면허시험이다. 이번에는 사실 붙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불합격이었다. 특별히 실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긴장탓에 서너번 실수하면 점수미달이 된다. 남들이 다 말리는 루트를 고른 내가 너무 바보같아서, 또 얼마나 더 준비해야 하는 걸까. 눈물이 났다. 시험관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그렇게 엉엉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냥 문득 너무 억울한거다.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은 나만의 날이었는데, 굳이 나에게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것 때문에 여태 받은 모든 축하와 응원과 기쁨이 망쳐지는 것 같았다. 해도 지지 않아서 그 날이 끝나려면 여섯시간도 더 남았는데, 나의 소중한 날은 훼손됐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친구가 평일에 가보면 덜 붐벼서 좋다는 근처 카페를 갔다. 자축하려고 시킨 블렌디드커피는 맛있었고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의 인테리어는 우아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 시험일정을 세팅하고 있자니, 이번의 시험관은 유난히 친절하고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먼저 신경써주고, 긴장을 덜어줬다. 감점요인을 물어보니까 하나하나 다 불러주고 다음에 또 하면 된다고 지금 이렇게 꾸준히 시험을 치는 것만해도 대단하다고 응원해줬다. 덕분에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감사하는 기분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더 생각하고 있자니 마침 그날은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일찍 퇴근한 김에 사람이 늘 너무 많아서 줄이 한참 긴 돈까스 맛집에 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머리가 팽팽 돌았다. 회의실에서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던 온갖 아이디어들이 계속 생각나서 줄을 서서 혼자 메모장에 뭔가를 휘갈기고 있었다. 이 정도 정리해 뒀으면 9월의 2주정도는 회의에서 할 말이 생긴 것 같다. 갑자기 뭔가 내가 일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주에 해야할 일이나 공유해야 할 것들이 머리 속에서 착착 정리됐다. 돈까스 고기는 정말 부드러웠고 느끼하지 않게 맛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정말로 공활한 가을하늘 아래에 바람이 휘몰아쳤고, 산책 겸 오늘의 운동도 끝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밤에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니, 처음에 목표했던 바를 이룬 건 아니지만,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생겨난 내 기쁨은 밤 늦게까지 온전했다. 내게 온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게 좋았다.
행복을 더 눈여겨 봐야겠다. 거창하게 내가 행복을 선택할 수 있고 내가 미래를 고를 수 있다까지 가지 않더라고, 그냥 내게 일어난 어떤 사소한 불행함이 나의 기쁨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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