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열기가 되살아난다. 온갖 경우의 수 중 단 9%라는 극한의 가능성을 뚫고 기적같은 역전승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며 온 나라가 붉게 타올랐다. 스포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마저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며 무한 새로고침을 했으니 말 다 한 게 아닐까. 끝이 보이기는 한다지만 여전히 발을 붙잡는 코로나의 우울한 기운과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조금씩 어려워지는 경기 등 우울하고 고여만 있던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좋은 이벤트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SNS에서는 긍정적인 밈이 하나 생겼다. '이미 졌는데' '가능성이 너무 낮아' '심지어 상대는 축구강국 포르투갈' '호날두 출전한대' ... 온갖 부정적인 말들 사이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긍정적인 밈이었다.

 

'알빠임?'

 

날은 추워지고, 한 해는 저물고, 나는 이룬 것이 없는 것 같고, 모든 용기가 시간에 빛 바래 사그라드는 연말이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가는 실패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나는 점점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이것이 바로 '나이 듦'이라고 생각했다. 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라고 그저 슬프게 받아들이면서. 

 

그런데 문득 저렇게 일견 단순무식해 보이기까지 하는 명쾌한 밈을 보고, 어쩐지 그것이 진짜로 사실이 되어버린 것을 목격하니 너무 신기하고 신이나는 것이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더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재고 따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해 보아도 되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 사실 확률이라는 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계산하는 데에 쓰는 허구의 숫자다. 아무리 높은 확률도 실제 발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차피 삶에는 0과 1밖에 없다. 확률은 그저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보조지표일 뿐이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근거가 아니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12월은 한 해의 시작을 준비하는 달이다. 올 해를 돌이켜보면서 성과를 찾아내고, 그를 바탕으로 내년을 준비하는 달이다. 사실상의 2023년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12월의 초반에 내년 한 해동안 마음에 품기 좋은 유행어가 생겨서 좋다. 내년에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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