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하루 자고 갔다. 대 여섯평짜리 작은 방에서 복작복작 보낸 짧은 시간에서 친구가 가장 놀란 점은 나는 넷플릭스 아이디도 없고 우리집에는 티비도 없다는 점이었다.

 

'너네 집에는 티비 없어? 너 영상 안봐? 밥 먹을 때 뭐 안 틀어놔?'

 

걔는 밥 먹을 때 꼭 티비를 켜 둔 댔다. 소리가 없는 게 싫은 것 같았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걸까?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집에 혼자 있을 때는 티비를 많이 켜 두신다고 했다. 적막한 집이 싫어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티비를 보지 않아도 틀어둔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라디오처럼 쓰는 것이다. 밥 먹을 때 그럼 아무 것도 안 보고 그냥 먹냐면서 화들짝 놀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를 돌이켜 봤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말이 나오는 영상을 켜 두고 다른 일을 해 본적이 없다. 어쩌면 가정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서는 밥 먹을 때는 꼭 하던 걸 다 멈추고 식탁에 모여서 먹어야 했다. 보던 영상에서 관심이 떨어지면 꼭 영상을 껐다. 노래도 켜 두지 않았고 가족들은 말을 많이 하는 부류도 아니었다. 대개 집은 조용한 편이었다. 내가 좀 자극에 예민한 편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 하나에 엄청나게 몰두해 있을 때가 아니면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특히 목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가끔 노래는 틀어두곤 하는데, 그것도 대부분 가사 없는 재즈 플레이리스트나 ASMR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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