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비올라는 귀여웠고, 첼로는 사랑스러웠다. 콘트라베이스는 믿음직스러웠다. 해금을 배우고 싶었다. 그 이유는 모든 음을 자유롭게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손가락을 두고, 어떤 세기로 당기거나 누르는가에 따라 아주 미세한 차이가 생겨 음이 오르고 내렸다. 모든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 얼마나 멋진가, 모든 소리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 얼마나 멋진가. 현악기가 가진 변화의 가능성은 얼마나 쉽게 눈에 보이는가.
하지만 이 생각은 배우면서 점점 사그라들었다. 독주도 가능했지만 대개 화음을 넣고 음이 더 많이 모일 수록 소리가 아름다워졌다. 그런 까닭에 음악은 본질적으로 소통이었다. 나와, 남과, 동료와의 소통을 위해 악보에는 정해진 음이 오른다. 모두의 머릿속에는 같은 음이 있어야 했다. 현악기가 많은 소리를 쉽게 낸다는 것은 곧 언제나 실수의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도는 양날의 검이었다. 해금은 언제나 자유를 약속했기 때문에, 연주자를 위한 어떠한 가이드도 제공하지 않았다. 연주자의 머리 속에 정해진 음이 없고 정해진 음악의 틀이 없다면 해금은 그저 혼자 깽깽이로 남을 따름이다. 조화로운 노래 속에서 홀로 튀어 분위기를 망치는.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이는.
지금의 나는 해금이었다. 나는 아주 쉽게 감정을 느꼈다.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했다. 상대적으로 이해하는 범위가 넓었다. 내 음계는 내 앞에서 나와 눈을 맞추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장조에서 나단조까지 자유롭게 움직였다. 주로 일대일로 만나는 나의 주위사람들은 나에게 대하기 편한사람이라고, 공감을 잘 한다고 칭찬하고는 했다. 본능적으로 상대를 따라 튜닝하는 나는 쉽게 동화되었다. 내 생각, 내 가치관이 여기 저기로 흔들렸다. 모든 소리를 내는 해금은 모든 소리에 동화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연인은 그 누구의 연인도 아닌 것처럼 모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 '공감'을 내가 나의 장점으로 삼자면, 나는 나의 기둥을 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얼마나 우스운지. 도가 어디인지 알아야 파도 솔도 정확해 지듯,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상대방에게 필요한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다. 스스로가 없는 공감은 그저 휩쓸림이고, 혼돈일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다짐하건대, 나는 내가 누구고 다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의 세계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파악하고 구분을 체화할 것이다. 모든 소리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모든 소리를 정확히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더 행복하고 더 꿋꿋하고 더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 Fe가 가야 할 길은 지금은, Fi와 함께해야만 하는 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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