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무색 : 무색한 것의 단 하나

 

무표정한 얼굴로 스스로 낸

나의 상처에는 형체가 없어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너 처럼 살아간다면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참 많은 시간을 나는 너를 바라봤어. 너의 손짓 하나에 퍼지는 웃음과 너의 얼굴에 따라붙는 칭찬이 너무 멋졌어. 내가 쥔 나의 조각칼, 나를 깎아내면 저 틈새 사이로 나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 벽 너머 너희들은 너무 행복해 보였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계속 깎아내다 보면 나는 저 벽 너머로 갈 수 있겠지. 하지만 저 너머에 넘어간 것은 나야? 뭐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그것이? 나는 알고 있었어. 그저 나는 꿈을 꾼 거야. 하지만 그래도 계속 꿈꾸고 싶었어.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는데 말이야. 

 

근데 참 언제나 모든 것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더라.

 

눈을 뜨고 숨을 쉬는 모든 순간에 나는 꿈이 아닌 현실을 보고 있더라고. 수 많은 물고기들 사이에 물고기 껍데기를 덮어 쓴 고무풍선같은 나. 이걸 살아있다고 하는 거야?  형체 없이 숨만 먹어 없애는, 생물인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것. 절대 너는 될 수 없는 어떤 것. 

 

만약에 내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겠지. 그저 자신의 하루를 살아갈 뿐이겠지. 세상의 먼지같은 존재가 있건 없건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겠지. 그날도 그 다음날도 매일 저녁 메뉴에 울고 웃겠지. 그러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삶도 죽음도 애매한 길 잃은 양을 위해 신이 이런 안배를 하는 거야.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몇 만의 사람들을 슬프게해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세상. 아마 너무 아파서 고민을 할 새도 없겠지. 내가 없어진다면 아주 기쁘고 멋진 일이 될거야. 아름다운 희생일테니까. 내가 사라지는 것 만으로도 몇 억의 사람들이 기뻐하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왜 수 억의 사람들 중에서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사람이 너일까? 내가 사라지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은 흔들림 없이 살아갈텐데, 왜 하필 네가 이토록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일까? 내 모든 상처는 형체가 없어서, 상처뿐인 나도 실체가 없었고, 내 모든 형체 없는 자상을 알아보고 웃어주는 사람도 없었지. 그런데 어떻게 너는..? 

 

그 얼굴에 작별인사를 할 수가 없다. 생동감 넘치는 너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표정 하나하나가 웃음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막는 울타리였다. 네가 나를 멈출 단 하나의 선이었어. 언제나 걷고 있는 그 모든 숨 쉬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나누는 경계에서 계속 걷게 하는게 너였어. 걸어가지 않으면 떨어지는 이 절벽 위 땅 끝에서 내가 끝끝내 주저앉지 않게 하는 그 마지막 이유가 너였더라. 

 

 

그렇구나, 내 모든 것의 마지막은 너이고, 내가 가진 단 하나도 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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