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어떤 진흙탕 싸움은 혼란스럽다. 그 혼란 속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으로 같은 판에서 혼란을 이겨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피에 절고 고통에 익숙해진다. 이러한 상황을 염려해 니체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어떤 싸움을 하더라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고와 이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때때로 비합리적이다. 사람이기 위해 가지는 가치와 신념과 삶이 사람이 정해진 결말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으로 아주 작은 희망만을 가지고 뛰어들게 한다. 어떠한 용기는 실낱같은 미래를 믿고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다. 종내에는 스스로를 죽이게 되더라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하여.

 

너는 겁이 많았다. 너는 언제나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 홀로 일어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두려워했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 천둥번개에 내 방에 숨어들었다. 처음 만나는 또래 친구들을 생각하며 움츠러들었고, 처음 느끼는 사랑에 지레 겁먹었다. 내 옷자락을 잡고 언제나 뒤로 숨었던 너는 그러나 모르는 새에 훌쩍 자랐다. 작고 어린 너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찾아냈다. 남들보다 더 멀리 바라보았고 더 일찍 알아차렸다. 겁이 많던 네가 그토록 홀로 많은 밤을 지새우며 울고, 고민했을 때 나는 네가 늘상 가지던 그 두려움으로 눈물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 때에 너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네가 그렇게 피어나는 순간에 함께하지 못 했다. 너는 홀로 피어나 스스로 나섰다. 모든 것을 이 자리에 두고, 미래에 죽어가기 위하여.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용기가 어떻게 스스로를 버려가는지. 짤막한 눈인사가 유언처럼 길었다.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을 버리는 너. 그 떨리는 등 뒤에 나는 그저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따름이다. 네가 애써 그어놓은 새하얀 금 안쪽의 사람, 나는 비겁하다. 이제 나는 나의 비겁함을 이겨내려고 애를 쓴다. 단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기어이 여기에 남아 어린 너를 새겼다. 모른 척 저 밖의 폐허에서 눈을 감고 아름답고 평온한 과거만 추억에 남겼다. 나는 눈길과 손길로 그를 언제나 붙잡고 이 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있을테다.

 

상처뿐인 너의 등 뒤에는 내가 버티고 있다. 네가 나를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나도 너의 등을 지킬테다. 날개를 찢어 스스로 나락에 떨어진 너는 그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이 자리에 내가, 날개 달린 너, 과거의 네 껍질을 잡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 말이다. 너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다.

 

싸움의 승패가 가려지면 날이 개는 하늘 아래 너는 붉은 피를 두른 승자로 남아있을 테지. 걱정 말으렴 아가, 그 때에 내가 잠시 맡아둔 너를 되돌려 줄게.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벗기고, 네가 두고 간 날개를 다시 입혀 줄게. 이것이 내 소명일 것이다.

 

 

 

 

 

Thomas Bergersen - Cassan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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