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수학이 싫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참 수학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보다야 덜 했지만,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이과가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중학교 1학년 수학 중간고사가 끝난 후 나는 그냥 문과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지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태초부터 문과로 태어난 본투비 문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학이 왜 필요한지, 수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문제를 풀어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의미가 없다면 재미라도 있어야 할텐데 그냥 비슷비슷한 여러 문제를 무작정 많이 푸는 건 노가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계산에 약해서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가는 몇 십분 붙잡고 있던 문제도 틀려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수학공부는 곧 극도의 긴장 속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유도 없이 힘들게 해야만 하는 수학공부란 나에게 아마 아주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대학에 와서는 거의 노이로제에 가깝게 반응하게 되었고, 가끔 주변인들은 왜 수능 잘보고 경영학과에 진학한 애가 이렇게 자신이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학을 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게 바로 한국 공교육의 문제일까.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난 참 뭔가 기호에 약했다. 아마도. 어릴 때 하던 구몬 수학 학습지를 대충 했던 것 때문일까? 여튼 초등학교 때에는 부등호를 반대로 표시해서 만점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많은 경우에는 구구단을 틀려서 틀린 답을 냈다. 6*8이 42라던지 뭐 그런거다. 6*3=9 뭐 이렇게 계산할 때도 있었다. 어쩌면 이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실수가 아까웠는지 어릴 때는 선생님들이 대체 왜 이런걸 틀리냐고 나무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수학= 계산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참 수학을 못하는 애라고 생각했다. 깔깔. 물론 지금도 나는 계산이 더럽게 느리다.
그러다 대학에 와서 한참을 방황하고 나서야 내가 그렇게 숫자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오히려 의외로 논리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수식들이 사실은 이런 배경에서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숫자를 사용해야 사람간에 대화가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계산을 좀 못해도 그정도야 계산기가 알아서 해 준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나.
교수님(무려 조직론 계열이셨는데)과의 회식에서 그분이 말씀하신, "세계를 글文로 표현한 것이 문학, 숫자數로 표현한 것이 수학"이라는 말에 수학을 다시보게 되었다. 정말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는 대단히 사소한 한마디였다. 자기소개서를 통해 읽는 이를 설득시켜야만 할 때에야 나는 '구체적인'이라는 단어가 '숫자로 서술된'이라는 말을 대체한다고 느꼈다. 그렇다. 내가 생각했던 하찮은(?) 계산이 수학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돈되고 단순한 공부와, 직접적인 기술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남들이 학을 떼는 도덕(윤리)이나 국사 같은걸 좋아했으니 수학도 좀 이야기처럼 배웠으면 나았을까 싶다. 뭘 증명하고 싶어서 세운 수식인지,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수식을 발전시켜서 어떤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함께 배웠으면 좋았을 거다. 시속이 다른 두명이 거릴 두고 출발했는데 같은 곳을 지날때가 언제냐 이런거 말고. 아니면 좀 좋아하는걸 중심으로 배웠으면 나았을까. 나는 도형은 좋아했는데.
똑똑한 친구가 매번 자기는 국사를 너무 못하고 싫어한다고 해서 '흠, 외국에 살다와서 그런가' 하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걔가 어느날 세계사 책을 읽더니 세계사를 앉은자리에서 요약을 하는 경지에 이르는 걸 봤다. 알고 봤더니 어릴 때 국사공부는 무조건 책의 모든 걸 토씨하나 안 틀리고 외우는 거라고 인식하게 돼서 노이로제 비슷한게 생긴거였다. 그래서 오히려 가볍게 책을 읽으면 효율도 효과도 높다고한다. 걔는 이제 몇년간 자칭 역덕으로 부르며 역사책을 읽던 나보다 더 세세하게 역사사건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교육방식이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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