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면서 뿔이 돋아나는게 흔한일은 아니었지만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다. 또, 어떤 아이의 옆구리에서 뿔이 돋아났다. 삐죽이 돋아나는 무언가에 미래를 예감한 것들이 어수선해졌다.
바닥에 박혀 정해진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이들이 뿔에 찔린 채 할 수 있는것은 아파하는것과, 아프기전에 잘라내는것 두가지뿐이었다. 뿔이없는 이들은 언제나 뿔이 돋는것과 돋은것을 경계했다. 그 세계는 그렇게 돌아갔다. 진흙에 박힌 동글동글하고 판판한 발 디딤돌들은 그렇게 버텨냈다. 그래서 언제나 경계할것을 배우고 자라난 아이는 뿔이 돋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자라난 뿔을 원망하기도 했다. 바란적도없는 뿔이 왜 자랐는지 아이는 알수 없었다. 아무도 뿔이 나지않았기에 물어보았더니 하나는 뿔은 원래 돋아나는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뿔이날때 옆얼굴을 붕대로 감아놓았더니 사그라들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뿔은 바라지않으면 자라지 않는것이라고 했다.
옆구리가 쑤셔진 옆집아이가 투덜거렸다. 뿔이자라 점점 자신의 자리를 침범한다며 좀 치우라고 된소리를 주절거렸다. 발이달려 도망갈수도 없는 생애에 유일한 위안이라면 물컹해서 폭신한느낌마저 드는 진흙이 다였는데 그 자리를 차지하니 옆집아이는 화를 내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이는 뿔을 잡아당겼다. 얼굴 어딘가가 당기고 아팠다. 뿔이 자라는 속도가 느려져 옆집 디딤돌이 조금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자 그얼굴을 보며 위안삼았다.
아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뿔은 없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더욱 자라기만 했다. 이제 옆집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대 여섯개의 디딤돌들이 함께 수런거렸다. 땅에 박힌 돌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지런한 질서라는 것을 아이가 깨트리고있었다. 길을 걸어다니던 주인이 종종 빈틈에 발을 빠트려 신발을 버리고 욕을 퍼붓고 돌아갔다. 주인의 단단하고 우둘투둘한 신발 밑창이 스치면 흔적하나 남지 않은 상처가 아팠다.
안 되겠다.
다른 건 불편한거야
불편한 건 나쁜거지.
그러니까 다른건 나빠.
나쁜 건 없어져야 해.
아이의 뿔이 잘리기 시작했다. 아프다. 다른 돌들은 몸이 떨어져나가도 피가 나지 않았다. 당연히 피가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피가 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뿔에서 맑은피가 흐르는데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뿔이 잘리고 다시 동그라미가 된 아이는 이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있었고 뿔은 나쁜 거니까 잘랐다. 참아야 하니까 참다가 눈물이 나니까 울었다. 그래서 다시 뿔이 자랐을 때에 뿔은 몸통 위에 자랐다. 사방팔방을 다 막아 놨으니 뿔이 위에 생겼다. 위에 자란 뿔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고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주위의 납작한 돌들은 뿔을 자를 수 없었다. 다만 위로 자라는 뿔 때문에 발에 채이는 횟수만 늘어나고 걸어다니는 주인이 욕을 내뱉는 날이 늘어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기어이 자주 넘어지는 이유를 주인이 발견했다. 매번 넘어지는 주인은 화가 났다.
주인은 삐죽 솟은 뿔을 몇번 발로찼다. 삐죽한 뿔이 부러져서 멀리 날아갔다. 뿌리까지 뽑히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부러진 뿔이 여전히 분노한 발에 채였다. 다들 까만데 이상하게 속 색이 하얗기만 한 뿔의 잘린 면이 너무 눈에 거슬렸다. 주인은 그에 아이를 뽑았다. 새로운 돌을 갖다넣기로 했다.
부러진 뿔 끄트머리에 이파리가 달려있었다. 뽑아낸 고구마가 진흙밭 어딘가에 데굴데굴 굴렀다.
'감수성폭발 > 메르헨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색한 것의 단 하나 (0) | 2016.09.27 |
---|---|
손이 마주치는 소리가 나면 두 손을 다 봐야지 (0) | 2016.07.27 |
걱정마, 너를 꽉 붙잡고 있을게. (0) | 2016.06.19 |
이런 된장, (0) | 2016.06.04 |
그녀와 그 (0) | 201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