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과응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람은 세상의 법칙앞에 평등해서 상처는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미움이 마음에 켜켜이 쌓여 무거운 발을 앞으로 옮겨 땅을 디딜 수 없게 된다. 가족, 특히 부모에 관련되어 상처가 쌓이게 되면 특히 그렇다. 어떤 의미로 궁극적으로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은, 상처가 있든 없든 나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도록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상처를 상처라고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픔들은 사람이 살아가면 당연히 있는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발견한 아픔이 대체 어디에서, 언제, 어떤 이유로 누구때문에 생겼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긍정하기 위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기 위해서 어쩌면 덮어뒀던 상처를 후벼파야 할 지도 모른다.
다음엔 화를 내야 한다. 나 뿐만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도 내가 어떤 언행에 상처받는지 명확히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상처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함을 상대방에게도 인식시켜야 한다. '왜 얘는 (마땅하지 않은) 상처를 혼자 받는가' 가 아니라 '이 아이는 이런 상처를 받으니 조심해야 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 사람이란 쉽게 자신의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변하는 것은 그 순간뿐인 경우가 많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쉽게 반성하고 태도를 바꾸는 사람이었다면 일이 이지경까지 오지도 않는다.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고 그 경우 화를 내는 당사자는 더욱 다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전래동화의 권선징악 스토리처럼 깔끔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 사이의 일이란 칼로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결국 미래로 나아가려면 어느 시점에서 전부 잊어버리고 분노를 덮어버려야만 할 때가 온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겉으로는 용서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휘둘러야 할 때가 온다.
그래서 타인의 잘못과, 나에게 끼친 영향을 확인한 후에는, '어쩌겠어,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게 내 삶인걸.'하고 뭉뚱그려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슬프게도 온전히 내 삶이 되어야, 내가 감당할만큼 손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요구하고, 통제할 수 없는 반응에 고통받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쉬운 일이다.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당사자 하나뿐인 모두가 쉬워지는 길이다. 정당한 처벌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고, 여전히 무언가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찝찝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판단이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나가기 위한 실용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근차근 시간에 기대어 여러 과정을 지나와 결국 미래를 위해 복수를 버려야 하는 시점에, 딱 당사자 그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결단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말이고, 해서는 안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까지 같이 짊어지겠다는 결단은 힘들다.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꾸역꾸역 조금씩 나누어 책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지난하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내일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일 것이다.
PS. 트위터에서 유입되는 걸 종종 발견하는데 역시 내 감성은 트위터 맞춤일까!? 최근에 또 트위터에서 발견한 심리 글을 보고 영감을 얻어 구구절절 썼다. 가볍게 쓰는 일기이기도 하고,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너무 진지한 소재이기도 해서 퇴고는 딱히 하고 싶지 않다. ㅠㅠ 근데 눈에 보이는 뭔가 몹시 거친 글을 보면 역시 뜯어 고치고싶다..!!!! 역시 나는 편집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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