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가 말을 하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내 생각이 정리되어 있을 때. 

두 번째는 상대가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유투버는 그렇게 말했다. 

 


 

 

듣자마자 몇 가지 사연이 떠오르면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시기를 가려 말이 아예 없을 때와 많을 때의 차이가 극명하고, 사람을 가려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큰 편이다. 그게 왜 그렇나면... 

 

INFJ는 생각이 많다. 나는 특히 직관수치가 원래 높은 편이었던건지, 어릴 때 부터 4차원이라는 말을 들었다. 장점이자 단점으로 뭔가 이것저것 튀는 생각이 많다. 게다가 J가 엄청 심해서 그때그때 결정하고 달라지면 그때그때 반응해 수정하는 P식 행동을 잘 못하는 편이라, 특정 기간동안 최대한 많은 정보와 경우의 수를 수집한 다음,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한 번에 결정하는 편이다. 이 두가지가 결합되면 생각은 오지게 많고, 많은 생각들을 모아서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들게 된다. 

 

생각을 정리해서 의견을 만드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들면 문제가 뭐냐면, 바로 말을 잘 못하게 된다는 거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건 나에게는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이템이 없는데 창업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 할 의견이 없다면 당연히 말을 할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으니까. 간혹 요구를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정리되지 못한 것들을 쥐어짤 때가 있다. 자연스럽지 않고 꽤 많은 노력이 든다. 그래서 사적인 관계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말 할 것이 없다면 당연히 말을 하지 못하는 거 아니야? 사실 나는 유투버가 이것을 INFJ의 특징으로 잡았을 때 조금 놀랐다. 다른사람들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말을 그냥 해? 말이 알아서 나오면서 정리가 된단 말인가? 좀 신기하고, 이게 되는 사람들이 부럽다. 반사신경이 좋을 것 같아. 

 

 

두 번째는 정확히는 나의 생각이 받아들여질 것 같을 때이다. 누군가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라기보다는 내가 말을 했을 때 받아들여지거나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냥 내 느낌일 수도 있지만, 눈 앞의 대화하는 사람이 나에게, 혹은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관심이 없고 재미가 없어 보일 때,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 때 나는 비언어적 표현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캐치한다. 그리고 굉장히 상처받고, 나의 생각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때 상대방은 내가 싫어하거나,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단순히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와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나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대화를 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았겠지. 내가 좋아하거나 함께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나의 부분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인 거다. 이건 천만명이 있으면 천만 가지의 생각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정말 당연한 것이고, 특히나 종종 다른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다. 그저 받아들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는 거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유투버가 INFJ에게 추천해 준 명언이 멋지다. INFJ는 높은 이상과 결합한 완벽주의로 쉽게 포기할 수 있고, 비뚤어질 수도 있고, 예수와 히틀러의 가능성이 동시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INFJ가 위대해지는 순간은, 자신 안의 내면의 악을 이겨내는 순간이라고 한다. 멋지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겠지. 어린 시절에 좁은문이라는 세계명작을 보고 검색을 하다가 성경에도 유사한 구절이 있다는 걸 봤는데, 그 때도 나는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감동받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아.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꿋꿋한 사람들. 너무 멋지다. 

 

나는 확실히 무교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성경의 어떤 부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발언들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좁은 문에 관련된 구절은 아마 이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리고 유사한 느낌을 받은 명언으로 이것이 있다. 미셸 오바마씨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When they go low, You go high. 

다른 사람들이 저급하게 굴더라도, 당신은 품위있게 갑시다. 

 

 

최근에 나의 단점 하나를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중요도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혼나다보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다. 

 

그게 뭐냐면, 남들이 요청하지 않은 업무를 스스로 찾아서 진행하는 행동이다.  

 

예전에 학교다닐 때 욕심껏 수업을 신청하다가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아마도 약간의 완벽주의? 통제광적인 성격? 4차원적인 엉뚱함? 넓은시야? 같은 것들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외로 일을 시키는 사람들은 굉장히 대충 일을 던진다. 자기도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혹은 자신도 체계없이 되는대로 일하고 있어서 시켜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는 까닭일수도 있다. 혹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니 품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지. 나는 누군가가 시작한 일에 내가 끼이게 되면 그 업무를 일단 열심히 파악한다. 지금 회사는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고, 지금 있는 팀은 특히나 항상 업무가 바뀌는 편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업무에 대해 정리한 최신 매뉴얼이 대부분 없다. 

 

그런데 파악하다보면 뭔가 다른 것들이 줄줄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혹은 예외가 너무 많아서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고. 그래서 예외들을 분류하고 있으면 추가업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낭비된다. A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A에 연관된 BCDE를 같이 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분명히 필요한 일인 것은 맞지만 함께 일하는 타인은 BCDE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소통의 오류가 발생하고 유기적이고 빠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고, 지금 내가 발견해서 함께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득 다시 생각해보건대, 내가 중요도가 낮은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장 필요한 것은 A라는 중요한 일인데, 그걸 빨리 끝내지 않고 중요도가 낮은 일에 매달려서 팀에 병목이 된 것은 아닐까? 솔직히 가끔, 별도 의논도 없이 해야 하는 일을 조용히 손에서 놓고 업무가 어디에서도 관리되지 않아 팀의 어딘가를 떠다니는 걸 보면서 조금 한심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게 맞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로들의 세계란, 얼마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유기적으로 일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니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말하고... 결국 구체적인 소통과 함께 일할 때는 소통된 대로만 일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던 것이다. 더 잘 일하려고 더 좋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타인과 약속된 곳 까지만 일하는 것이 팀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자세였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요즘 에너지를 과하게 쓰지 않고 중도를 지키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결국 같은 맥락이다. 중도를 지키고 혼자 폭주하지 말 것. 내가 장기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행동강령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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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름 신경쓰던 일 하나가 끝나자마자 코로나에 걸린 걸 보고 어쩌면 내 딴에는 풀어진다고 풀어진 것이 아직도 긴 삶을 살아낼 만큼 풀어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지, 나는 내게 맞는 방식으로 끝이 없는 것만 같은 길을 자체적으로 나눠서 달리고 있었는데, 다만 아직 긴장해 집중하는 것과 이완하고 편안히 쉬며 재충전하는 것을 오가는 게 능숙하지 않을 뿐이다. 

 

8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터 대학교를 졸업하는 20대 중반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학기에 맞춰 삶을 조절해왔다. 목표와 계획이 삶의 동력이 되는 나에게는 기간을 쪼개고, 그 기간 동안 이룰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내가 정할 수 없는 환경이 동시다발적으로 바뀌는 학기에 내 개인적인 시간 단위를 동기화시키는 건 굉장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다. 1년을 1학기, 2학기와 여름, 겨울방학의 4번으로 쪼개고, 학기는 2번의 시험기간으로 또 쪼개고, 그 사이사이 시험날짜와 과제제출일자를 기준으로 또 시간을 쪼개고, 그러면 그 주차에 할 일이 정해지고, 그러면 그거에 맞춰서 하루하루를 쪼개고, 시간도 쪼개고 분도 쪼개고... 그렇게 그냥 다 쪼개서 살았다. 특별히 쪼갠 시간에 정해진 계획을 전부 완수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시간을 쪼개서 거기에 내가 미래를 미리 채워두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동기화했던 시간의 틀은 사라졌다. 입사한 회사는 제조업이 아니라 유통업이었기 때문에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이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스케줄이나 체력에 맞춰서 알아서 쉬었다. 나는 취업준비를 하고, 입사를 하고, 아둥바둥 버티고, 이 이후에 내가 어떻게 더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안에 떨고 쫓기면서 언제 쉴 수 있을지를 몰랐다. 지금은 일단 버티면 돼, 하고 그냥저냥 버티던 날도 하루이틀이다. 이제는 좀 멀리 봐야 할 것 같다. 억지로 생각을 끊고, 의도적으로 연차를 쓰고, 일부러 약속을 잡고, 그렇게 쉬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널부러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재충전하고 스스로 페이스 조절하기! 인생은 길고, 나는 아주 오래오래 일 할 거고, 하루하루의 업무 퀄리티에도 좋은 컨디션으로 임하는게 진짜진짜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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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달 고민이 많았다. 나는 말을 하고 싶고,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 나만 할 수 있는 생각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사람마다 허용범위라는 것이 아무래도 있는 모양이라 어디까지가 가벼운 피드백으로서 타인에게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지, 어디까지가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건지 건건이 다른 걸 내가 다 어떻게 알란 말인가. 그래서 상사로부터 받는 피드백에 기반해, 표현을 매끄럽게 할 수 있도록 신경썼다. 뇌에서 입까지 고속도로 태우지 않고 최대한 돌려서 말할 수 있도록 필터를 거칠 수 있도록 애썼다. 메모장에는 자잘한 느낌표들이 늘어났다. '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기! ' , '가장 주요한 근거를 붙여서 3줄 내로 요약한 걸 빨리 말하기!' 생각해보면 나는 글도 이런 방식으로 쓰면서 발전했다. 일단 쓰고, 여러번 다시 읽으면서 스스로 퇴고하고. 그래서 말하기도 비슷하게 하면 될 것 같았다. 

 

다만 이러니까 단점이 있었다. 사실 뻔한 이야기다. 나는 원래도 마이너스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약간의 후천적인 완벽주의적 기질로 인해 몸을 사리는 편이고, 무언가를 타인에게 내놓기 전에 굉장히 많은 수정을 거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분명 나는 뭔가를 굉장히 많이 생각 하는데 그만큼 많이 포기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최근에 실장님한테 미팅할 때 자기 의견은 직접 이야기하자고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나을지 생각을 좀 더 해봤는데, 틀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다. A혹은 B중에 뭐가 낫냐는 질문을 받아서 거기에 대해 A혹은 B로 대답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의견제시 및 참여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없다. 사람들은 의외로 타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더라? 그렇다면 더 많은 경우, 즉 담당자가 의견을 구하지 않았는데 내가 의견을 내야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을 해 보자. 일단, 담당자가 의견을 구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의견을 내서 XX를 없애라고 주장하는 건 월권이 될 확률이 높다. 뭔가 담당자의 생각이 있었고 이유가 있어서 결정한 것일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담당자가 생각을 못해봤을 수 있는 의견을 내는 거다. VV를 추가하면 어떨까, 문구에 TT를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담당자는 그거에 대해 검토만 하면 되니까 일단 기분나빠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에 집중하는 거다. 

 

이 연습은 회사생활 뿐 아니라 내 삶 전반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꽤 여러번 느낀 바지만, 내 자신감을 위해서, 나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의 첫걸음으로, 내가 세상에서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한 자리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있도록 하는 데에는 내가 세상에 플러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큰 변화는 작은데서 시작하는 거니까, 이렇게 시작하는 거다. 태도가 바뀌기 전에 시야가, 시야가 바뀌기전에 말하는 습관이 바뀔 수 있도록. 

 

 

 

 

* 아 아무말이나 해서 나도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퇴고해야지 (...습관 또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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