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개인적으로 쓰는 심리블로그였는데 게임 지분이 너무 늘어나서 좀 자제를 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남겨오던 것들이 있으니까 한 번 써 보는 지난 1년 되돌아보기. 요즘은 사실 가끔 이 게임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순간이 와서 나도 슬슬 멀어질 때가 됐나 싶었는데 또 막상 한 달 단위로 정리하고 나면 나는 꽤 오랜시간을 로오히와 함께 하면서 많은 것들에 미쳐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작은 작년 7월부터로 할까.

21.7 극한 효저 오벨리스크
- 오벨리스크를 한참 즐기던 때였는데, 린이 출시되어서인지 던전의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적의 효과저항이 눈에 띄게 높아진 적이 있었다. 이 때 나도 고층에서 극대노해서 글 쓰고 여기저기 커뮤니티도 서치하고 그랬었는데... 생각보다 나처럼 게임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기 너무 어려워서 싱숭생숭 해지기만 했다. 다들 '딜쾅 후딱후딱 대충 던전 밀어'파였고. 그래서 속으로 궁시렁 거리다가 오벨리스크 컨셉 플레이 관련 시스템을 넣어달라고 건의한 적도 있었다(!)이 때의 나, 시간이 많았나 보다... ㅎㅎ

21.8 엘리트 2부 , 불루실 + 불요한 영입
-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있고 신규 스토리가 드디어! 오픈되어서 열심히 스토리를 밀었다. 많이 신경쓴 듯한 퀄리티라서 나는 꽤 만족했다. 1주일마다 오픈되는 것도 너무 좋았다. 마침 이야기의 끝이 보이길래, 빛요한을 데리고 클리어를 해 보겠다며 난리난리였다. 소위 뽕이 엄청나게 차 있었던 해피 한달! 진짜 2부 마지막장 열릴 때는 스포없이 바로 보려고 연차도 썼더랬지. 방송도 보고 재미있었다. 이 때 스토리에 대한 의견차로 굉장히 시끌시끌했는데 뭔가 오랜만에 머리를 엄청 굴리고 컨텐츠를 해석해보기도 했다. 게다가 심지어 이 즈음에 불요한도 재출시해서 진짜 미쳐있었다. 0916채널에서 울부짖으면서 막 10개월만에 드디어 내가 불요한을 들인다니까 사람들이 이모티콘으로 축하해줬다. 생각과는 좀 달라서 서먹하기도 했는데 옷입혀주면서 열심히 데리고 다니고 하니까 또 귀여워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21.9 육성
- 아무래도 크게 한 방 지른 달 다음 달은 쉬어가는 달이 아닐까. 보통 이런 달에 나는 육성이랑 템세팅을 한다. 그러면서 레이드 나가고. 그렇게 약간 심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차였는데 요한의 생일에 사람들이 행복으로 날뛰는 걸 보고 나도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온라인에서 이렇게 막 커뮤니티 활동을 해 본적이 없어서 엄청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21.10 오벨리스크, 친구
- 결국 그래서 친구를 사귀어 보았다.

21.11 게임하면서 연성도 함!
- 내가 연성러가 되다니! 근데 처음해보는 커뮤생활은 꽤 중독적이고 짜릿했다. 친구들이 약간 서운해 했음...

21.12 암라우 영입, 장어전 업데이트
- 맞다 생각해보니까 골드 모아야 해서 좀 게임을 덜 한것도 있었다. 온갖거 다 팔아서 12월쯤에 간신히 암라우를 영입할 수 있었다. 진짜 패키지도 사고 크리스탈도 팔고 말도 아니었음. 사실 생각해보면 딱히 암라우를 꼭 데려올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골드를 낭비하는 편이라 (템을 일단 강화하는 사람) 지금 빨리 데려오지 않으면 영영 영입 못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 캐는 진짜 핵필수캐라고 다들 감탄하기도 했고. 그래서 암라우를 들이고, 들인 김에 딜러를 키우게 됐다. 딜러는 키우기 귀찮고 템 뽑기 하고 닦아야 해서 별로였는데, 어쩔수 없지. 이렇게 고생해서 들여놓고 피규어로 만들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22.1 큐브마켓 템세팅, 아발론조 오벨 49
- 남들은 재밌다는데 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고~ 나는 내가 하고싶은 걸 해야 하지~ 큐브마켓이 생겨서 다들 템 세팅하기 힘든 스트라이커 템 찾아 헤매는데 나는 요한템이나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근데 이게 더 짜릿한 걸 어떡해. 겸사겸사 오벨리스크 49층을 아발론 얼굴로 깨는 위업(?)을 달성했다! 거의 3달만이었나? 아무도 모를 나만의 소소한 자축을 하면서 새벽에 진짜 날뛰었던 것 같다. 이런거 너무 좋아. 뭔가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내가 성취하는 그런거. 남 눈치볼 필요도 없고.

22.2 오벨리스크
- 기억은 잘 안나는데 아마 오벨리스크 했을거다.

22.3 물요한!
- 2주년! N주년은 아무래도 꽤 큰 이벤트였지. 방송도 하고 물요한도 출시하고 큰 이벤트도 했다. 앞으로 나올 아티팩트나 코스튬 미리보기 같은거 하면서 엄청나게 날뛰었다. 다만... 물요한이 뉴비 7명 모아오기 조건으로 영입할수 있어서 진짜 극대노했음. 진짜 회사 사람들한테까지 복귀좀 해달라고 구걸해서 친구모으고, 나머지는 카르티스했다.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플레이어들끼리 십시일반 돈 모아서 기부하는 문화는 정말 좋다고 생각하고, 내가 조금이지만 기여한 기부장도 방송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는데 물요한 친구7명은 진짜 너무 했어. 한동안 기가 빨려서 좀 쉬었다.

22.4 물요한 육성, 마도대전 1부
- 화가 나든 안나든 내새끼는 내가 키워야하니까 열심히 육성하고 장비 맞춰 줌... 있는 크리스탈 다 털었는데도 뭐 딱히 얻은 건 별로 없었다. 궁12렙 같은거 해보고 싶었는데 실패함. 반지만 다섯개씩 막 나오고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가디언용 템은 넘쳐나서 의도치않게 딜러 한명 4공 속칲 완성함.

22.5 빛요한 밸런스패치, 아티팩트
- 빛요한!!!! 밸런스패치로 상향되었다!!!!!! 오열!~! 진짜 여태 사람들의 극딜, 스레기취급들 다 견디면서 나는 게임 포기한다, 요한만 쓴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오만 데 다 데려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스탯과 스킬 확률의 한계로 더 이상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손을 놓은 부분이 있었는데 어쨌든 그 부분이 패치됐다. 이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요한 실사용후기에 써 둔 내용들이 다 반영됐다! 마음 속에 응어리진 한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실질적으로 이 캐를 사용하기가 쉬워졌느냐? 하면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도 십분 이해하지만 아무튼 나는 내새끼를 드디어 건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뿌렸다. 그러면서 아티팩트도 나왔는데, 보조하기 좋아보였다. 아예 새로운 스킬을 주는 다른 캐들에 비하면 솔직히 굉장히 보수적인 패치라고 생각하고 가끔 머리에 피가 몰리기도 하지만, 아무튼... 최저선을 넘겼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나는 드디어 뭔가 바뀐 요한을 데리고 또 오만곳을 다니면서 덱실험을 했다. 아 짜릿해~

22.6 아발론페이스 오벨,요한 옷! 일러!
- 또 오벨리스크 했다. 요새 갑자기 난이도가 많이 내려가서... 생각보다 쉬웠음. 금장클을 해야하기 때문에 노말속성 아발론 말고 그냥 얼굴이 아발론이면 쓴다는 여유로운 조건을 두고 했다. 40층이랑 50층은 좀 어려웠는데, 그래도 아무도 안 하는 이상한 덱 가지고 클리어하니까 또 그게 기분이 좋다.

22.7 육성
22.8 육성
- 아마 평범하게 육성했을 거다. 암라우 이후로 스트라이커도 키우게 돼서 딜러도 좀 키웠고, 그러는 김에 레이드도 좀 신경을 썼다. 체방효적효저템은 스트라이커가 쓰지 않아서 버리는 템만 많아지고 쓸만한 건 없고 해서 스트레스 좀 받았던 듯. 큐브마켓에서 주옵션만 보고 많이 샀다. 근데 또 장어는 귀찮고 욕도 많이 먹는 것 같아서 이면의 결정체는 수집을 못함.

22.9 마도대전 2부
- 마도대전 2부가 나왔다! 격동의 서~ 개인적으로는 1부가 좀 더 재밌었던 것 같다. 2부는 뭔가 보다 끊긴 기분이 ? 든다 . 아무튼 마도대전은 이야기가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은 기분이라 영웅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봤다. 어린(젊은X)발터가 의외로 취향(...). 이 이후에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려고 그러는 걸까. 그 외에는 장비프리셋이 나왔는데 템이 없어서 차근차근 채워야 할 것 같다. 근데 뭔가 내가 하던 방식이랑 비슷하게 운용하라는 게 느껴져서 좀 편한 느낌? 어쩐지 자아가 비대해져서 역시 나는 클겜이 원하는 고객? 같은 생각이나 하고 앉았음.

22.10 개편 속성 레이드, 과몰입?
- 레이드가 개편되어서 속성의 중요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그냥 키워뒀던 캐릭터들 먼지털고 보내니까 좀 새롭기도 하고 할게 많아져서 좀 막막하기도 하고 그랬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쩐지 불속성캐들을 많이 키워둬서 풀메기 전용 로드가 됐다. 어쩌다보니 연합 랭킹이 높은데 그래도 내가 그 안에서 3등까지 함! 그냥 키워둔 애들 쭉 보내면 메기가 한번에 두번씩 누워!
그리고 다시봐도 아발론제복너무좋다. 이번에는 솔피였는데 진짜 역대급 퀄리티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국조 별로 안 좋아하고, 솔피는 특히 내가 안 좋아하는 유형의 성격이라 그냥 옆집 딸내미 같은 느낌이었는데(친구가 좋아하는 캐가 아니었다면 영입도 안했을거다) 귀여우니까 약간 자주 쓰게 됨. 암솔피 2각만렙풀스작의 기운이 난다. 실타래 모아서 다른 캐들 옷도 모아 둬야지.
- 이번 달 클로버탐방대(회사탐방) 모집이 있었다. 사실 과몰입이 심해져서 입사지원을 고민했는데 내가 나이와 연차가 있는데도 클겜에서 하는 업무와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말았다. 안 될 값이라도 일단 지원해 보는 게 나았을까?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나이도 생각 없이 먹는 기분이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하루는 열심히, 길게 보는 인생은 대강 살으라는 말을 어디서 봤는데,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그 말로 위안삼아 본다.

 

나에게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작업의 일환이다. 

 


 

작은 실수에 대해서는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고작 그 걸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작은 실수를 발견하면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나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돌려지는 비난/비판에 민감한 편이다. 민감하게 받아들여 한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되고, 하루종일 우울해 할 때도 있다. 나를 관찰해 보니,  나는 좀 나에게 많이 엄격한 것 같다. 

 

아주 작은 해라도 다른 사람에게 끼친다면, 아주 작은 폐라도 끼친다면, 이상적으로는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잘못이 1%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조금 불편해보인다면 갑자기 나를 스레기색기로 스스로 매도한다. 어떻게 그것도 생각하지 못했냐고. 갑자기 앞으로 영영 엄청난 미움을 받을 것 같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 같고, 그래서 내가 너무 바보같고 모자란 것 같고, 이것이 진짜 나인 것 같고, 엄청나게 우울해지더라. 최근에 연달아서 그런 일이 두 번 있었는데, 30일에 자잘한 실수와 주의력 저하로 (예를들면 이미 있던 번호를 기간만기된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써서 파트장님을 귀찮게 한 것) 파트장님에게 혹시 요새 무슨 일 있냐고, 요새 잘 한다 싶더니 왜 또 이러냐고 듣고 엄청나게 우울해진 것이 있고 - 사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했을 것 같은데, 내가 특별히 더 못났던 게 아닌 것 같다. 애초에 그 번호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만료된 것이라고 어케 생각하지? - 오늘 새벽에는 몽롱한 정신으로 당사자에게 알람이 가는 인용을 모르는 사이인 사람에게 해서 놀랐다는 말을 듣고 머리가 새하얗게 돼서 또 나를 질책했다. 별 것도 아니고 내가 미안하다 해서 끝난 일일텐데 당시에는 너무 무섭고 그냥 다 피하고 싶어지는 거다. 이게 공황의 전단계일까 싶은 정도였다. 

 

사람이 어떻게 매양 그 누구의 선도 침범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할 수 있을까. 가능한 사람이 있겠지만, 소수고, 그것이 나는 아닐 것이다. 동시에 나처럼 사소하게 누군가의 선을 침범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중요한 건 사과하는 거고, 다음에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거다. 

 

최근 내가 극도로 우울해 했던 건, 파트장님은 사소한 민폐에도 바로 반응하는 사람이며 꽤 감정적인 사람인데, 표현방식보다는 거기 묻어있는 감정이 너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던 것인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의 비슷한 친구와 절교하며 느꼈던 감정이 (아마도) 떠올랐던 것 같고, 그것에 짓눌렸나보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은 딱히 나한테 그렇게 태도나 방식에 관련된 피드백을 하지는 않고, 다른 팀에 있을 때는 성실하고 일을 잘한다는 말도 종종 들어왔는데 요 몇달동안 전부 잊어버린 모양이지. 센스가 좀 없는 편이고 유머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평범한 사람인걸!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듯, 나에게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보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더 생각하는 게 맞다. 그냥 내가 부족한 부분은 장기적으로 조금씩 커버하자. 그리고 그것보다 내가 가진 장점에 더 집중하자! 

 

내가 가진 장점이 뭐더라? 그게 지금은 더 중요한 듯! 늘 생각하잖아, 지금은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시대라고. 약점이 아무리 있어도 날카로운 장점만 있으면 그걸로 되는 시대라고. 


 

※ 나한테 정병이 있는 게 아닐까 크게 확대해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냥...INFJ의 특성에 내가 지레 놀라서 우울해했던 게 있는 것 같다. INFJ 검색하다가 갑자기 침착해지면서 안심이 됨. INFJ는 어릴 적에 방황을 많이 하는 유형이라고 한다. 생각이나 번뇌가 많아서 결정을 어려워하는데,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살아보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교훈을 얻어 이정표로 삼아야 하지만 어릴 땐 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결국 나는 내가 실수가 많고 한 번에 해내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원래 그런거인 거다. 그냥 그렇게 0에서부터 맞춰가면서 점점 더 현명해지는 그런 유형인 거지. 어릴 때 이것저것 많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겁 먹지 말고 더 많이 도전하고 직접 느끼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더 두려움없이 미래를 믿고 움츠리지 말아야겠다. 더 나아지기만 하면 되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딜 가도 갈 수 있다. 

'일기장톡톡 > 마주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주하지 말 것.  (0) 2022.11.13
페이스 조절  (0) 2022.11.06
주의력과 집중력  (0) 2022.09.26
선택  (0) 2022.09.18
중요하지 않은 스크래치에 집착하지 말기.  (1) 2022.08.15

 

우영우 드라마가 뜨면서 신경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물 밖으로 나왔다. 뿐만아니라 오은영 박사님과 최근 트렌드로 인해 심리이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 같다. ADHD도 그와 같다. 단순히 굉장히 정신이 사나워 일상에 집중이 되지 않는 어린아이 정도의 인식을 가졌던 ADHD가 이제는 더 분화되어 다양하게 노출되고 있다. 

 

어쩌면 그런 흐름에 휩쓸려 단순히 '혹시 나도?'라고 생각하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용한 ADHD들은 전형적인 산만함과 다른 증상을 나타낸다고 해서 찾아보니 마침 나와 비슷한 것들이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성인 ADHD인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 부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 중학교 때는 그거 때문에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혼난 적도 있고, 그 해결책으로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삶에서 굉장히 많은 가지를 쳐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여러 문제들이 얽힌 것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 그리고 어릴 때 부터 과집중, 과몰입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특히 이야기에 빠지는 경우가 잦았고, 가끔은 수업이나 시험, 과제에도 빠지기도 했다. 몇 번은 쉬는 시간에 소설책을 읽다가 선생님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한참을 책만 본 적도 있다. 약속시간 직전에 뭘 하다가 출발시간을 놓쳐서 지각하는 건 일상다반사다. 과몰입 직후에는 마치 자다 깬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미친 메모와 계획에 빠졌다. 몰입을 하지 않으려고도 해 봤는데 그랬더니 너무 인생이 붕 뜬 상태로 아무 데도 집중이 안돼서 힘들었다. 그리고 보통 이 경우에 누군가가 문제있냐고 물어보더라. 교수님이나 팀장님이나 .... 누군가들에게 유의미하게 차이나게 텐션이 가라 앉는 듯하다. 동시에 최근에는 소음에도 예민해졌는데, 클락션소리나 갑자기 쾅소리가 난다던지 하는 것들을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종종 무언가의 디테일을 무의식 중에 넘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뭔가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순식간에 까먹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주로 작은 실수가 큰 문제를 일으키는 수학에서 문제가 많았다. 딱 한 문제 틀렸는데 그걸 >< 를 반대로 쓴 초등학교 때 일이나. 풀이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계산중에 암산하다가 2x6=48 처럼 구구단을 잘못 외워서 틀린 중고등학교 때 일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꼭 다 푼 후에도 극도의 긴장속에 두 세번 더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국어 같은 경우에는 [않은]을 못 보고 반대로 풀어서 틀린 경우도 있었다. 대체 어디서 뭘 잘못보는지 예측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꼭 모의고사 같은거 많이 해서 내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 다 쭉 체크하고 하나씩 다 고쳐야 했다. 뭐든 한번에 바로 하지를 못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특성이다. 이건 지금도 좀 그런 편인데, 뭘 할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한 번에 한 적이 없다. 

 

감정기복도 좀 큰 편인데, 별 것 아닌 사소한 일로 크게 상심하곤 한다. 어딘가 어긋난 것 같아서 요즘은 열심히 생각의 중심축을 다시 맞추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과잉행동은 없는 사람이다. 원래도 마구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 몸을 잘 못 가누는 편이라 신중하게 움직이는 습관이 배인 것도 있다. ADHD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니까 ADHD라고 하면 주의력의 부재, 집중력의 부재, 산만함, 이런 것들이 메인 증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나는 ADHD와는 굉장히 먼 사람이다. 어릴 때 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했던 나는 지극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부터 학습장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계획을 사랑하는 미친 통제광이기도 하다. 심할 때는 다이어리를 세 개씩 사용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주의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집이나 책상 정리도 잘하는 편이다. 주변이 정리가 안 된걸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내가 요즘 문제라고 느끼는 것들은 병이 아니라, 최근 주의력이 떨어졌다는 신호가 아닐까? 긴장을 많이 하고 그 탓에 쉽게 방전되고 매순간 집중하려 애쓰는 것이 너무 많은 힘을 쓰고 나를 지치게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삶과 일의 밸런스를 맞추는 연습의 일환으로 몸에서 힘 빼기를 연습하고 있다. 힘을 빼면 일상이 너무 아무것도 없이 그냥 흘러가 사라져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원래 이정도로 산다고 하니까 나도 좀 그렇게 살아보려고. 나에게 과도하게 엄격하게 군 나머지 당연히 이 때는 이만큼 집중해야해, 그것이 돈을 받는 것에 대한 예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한 예의야! 라고 생각하며 기준을 높여뒀지만 그렇게는 오래 못 살 것 같다. 

 

이게... 진짜라고? 다른 사람들도 힘을 빼고 이렇게 산다고? 일상은 어떻게 유지하는 거야?? 싶지만... 어쩌면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조금 더 나와 내 인생을 더 정리해보자. 항상 불어닥치는 변화의 바람에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중심을 세우고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일기장톡톡 > 마주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이스 조절  (0) 2022.11.06
메타인지 회복을 위한 한 걸음  (0) 2022.10.02
선택  (0) 2022.09.18
중요하지 않은 스크래치에 집착하지 말기.  (1) 2022.08.15
지금의 나에게서 시작하기  (0) 2022.08.13

가끔은 지금 내 삶에 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모든 것들이 수시로 바뀌고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새로운 선택을 너무 자주 내려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일의 경중을 쉽게 구분하기 어렵고 모든것에 올인하는 나의 문제도 있는  것 같긴한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현실은 엄격해서 단순해보였던 선택이 어느 순간에는 가슴을 치며 후회할 흑역사가 되곤 하니까 선택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좀 지치기도 하고, 시간이 없는데도 마음의 평화를 위해 뒤로 미루기도 한다. 좀 더 강해지면 될까? 몸도 마음도 갈고 닦아서,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

 

지난 금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특별히 어떤 날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대개 개강 등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즌에 생일이 있었던 터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내가 태어남을 축하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난 주는 특히 추석과 가을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업무가 많았고, 나도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어 쭉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심 즈음 생일을 등록해 둔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고 친구들, 지인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한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냐, 고민은 해결 됐니, 다음에 한 번 보자... 생일을 핑계로 연락하고, 연락이 닿은 김에 이야기를 시작하며 카카오톡 친구창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따뜻한 시간 속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허물어졌다. 흐물흐물한 표정으로 스크럼을 위해 영상을 켰더니 친하게 지내던 팀원들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급한 일 없으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고 푹 쉬라고 해 줬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 날은 나를 최우선으로 둬도 됐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기쁨을 즐겼다. 아무튼 이게 행복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시험을 치러 갔다. 꽤 오랜시간 나의 평일저녁을 잡아먹으며 내게 고통을 준 운전면허시험이다. 이번에는 사실 붙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불합격이었다. 특별히 실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긴장탓에 서너번 실수하면 점수미달이 된다. 남들이 다 말리는 루트를 고른 내가 너무 바보같아서, 또 얼마나 더 준비해야 하는 걸까. 눈물이 났다. 시험관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그렇게 엉엉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냥 문득 너무 억울한거다.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은 나만의 날이었는데, 굳이 나에게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것 때문에 여태 받은 모든 축하와 응원과 기쁨이 망쳐지는 것 같았다. 해도 지지 않아서 그 날이 끝나려면 여섯시간도 더 남았는데, 나의 소중한 날은 훼손됐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친구가 평일에 가보면 덜 붐벼서 좋다는 근처 카페를 갔다. 자축하려고 시킨 블렌디드커피는 맛있었고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의 인테리어는 우아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 시험일정을 세팅하고 있자니, 이번의 시험관은 유난히 친절하고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먼저 신경써주고, 긴장을 덜어줬다. 감점요인을 물어보니까 하나하나 다 불러주고 다음에 또 하면 된다고 지금 이렇게 꾸준히 시험을 치는 것만해도 대단하다고 응원해줬다. 덕분에 오답노트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감사하는 기분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더 생각하고 있자니 마침 그날은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다. 일찍 퇴근한 김에 사람이 늘 너무 많아서 줄이 한참 긴 돈까스 맛집에 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머리가 팽팽 돌았다. 회의실에서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던 온갖 아이디어들이 계속 생각나서 줄을 서서 혼자 메모장에 뭔가를 휘갈기고 있었다. 이 정도 정리해 뒀으면 9월의 2주정도는 회의에서 할 말이 생긴 것 같다. 갑자기 뭔가 내가 일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주에 해야할 일이나 공유해야 할 것들이 머리 속에서 착착 정리됐다. 돈까스 고기는 정말 부드러웠고 느끼하지 않게 맛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정말로 공활한 가을하늘 아래에 바람이 휘몰아쳤고, 산책 겸 오늘의 운동도 끝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밤에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니, 처음에 목표했던 바를 이룬 건 아니지만,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생겨난 내 기쁨은 밤 늦게까지 온전했다. 내게 온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게 좋았다. 

 

행복을 더 눈여겨 봐야겠다. 거창하게 내가 행복을 선택할 수 있고 내가 미래를 고를 수 있다까지 가지 않더라고, 그냥 내게 일어난 어떤 사소한 불행함이 나의 기쁨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일기장톡톡 > 바라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에는 0과 1뿐이므로.  (0) 2022.12.04
-말고 +에 집중하기  (0) 2022.10.23
너무 미우면, 사랑해 버려.  (0) 2022.06.11
자연을 바라보며 푹 쉬기- 호캉스 후기  (0) 2022.06.05
분리병  (0) 2021.12.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