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탱

진짜로!

입밖으로 얘길 해 차이를 인식 해 그러고나서 조율을 하잔말야
그냥 척이면 척인데 왜 너는 이상하게 생각하니?라는 반응 진짜싫어 일을 해야하잖아 회사는  그냥 대충 눈치로 뭉개면 안되는 곳이잖아

나는 길치다. 다행히도 지도가 있으면 길을 잃지 않는데 지도를 잘 보는 편이라서 네이버지도앱이나 구글지도앱이 생겨난 후에는 길을 잘 찾고 있다. 과학기술 만만세! 

나는 길치다. 안타깝게도 삶에는 지도가 없다. 지도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운명론에 빠져 있을 때도 있었으나, 기대와 달리 무수한 선택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미래를 설명하는 지도는 없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한 번에 길을 못 찾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오만해서 대개 많은 사람들에게 지도로 취급되는 타인의 발자취를 거부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 그냥 나는 길처럼 생긴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 웅덩이를 밟거나 쉽게 지나치는 수풀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그로 인해 나는 반드시 헛다리를 짚어야만 하고, 배우는 데에 필연적으로 남들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다시 되돌아보면 나는 남들은 필요로 하지 않아도 반드시 지도를 만들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다. 나는 길치니까. 나는 길을 모르니까. 인간들 사이에 끼인 박쥐인 셈이다. 앞에 보이는 걸 죄다 밟아보고 미래에 밟을 것을 죄다 미리 예상하고 나에게 마치 아침에 해가 뜨는 것처럼 당연해질 때까지 실수하고 그렇게 돌아오는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의 사고방식을 일일이 수정해야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어쩔도리 없이 평생 오답노트를 달고 살아야 할 운명인 것이다. 

꾸준히 나의 실수와 실패를 마주하는 것은 종종 버겁다. 세상에 나오고 나서야 세상은 학교처럼 자잘한 실수들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언제 어느 때 나의 실수와 실패가 나를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몰아넣을지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대기만성형이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을 따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스피드로 살아야 하고, 초조하지 말고 차근차근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채우는 거다. 실수할거면 빨리 실수해버리자. 실패할거면 빨리 실패해버리자. 결국 마지막에 웃기만 하면 된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모바일게임 로드오브히어로즈 2차창작

[어둠] 조슈아 영입 스토리를 기반으로 추가적인 해석과 상상을 덧대어 쓴 이야기입니다!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공식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감상에 참고 바랍니다.


-☆----


 
아발론의 저녁은 꽤 시끌벅적하다. 어쩐지 아발론 기사들은 일이 끝나도 미적거리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날을 잡아 모이지 않아도 여기저기 몰려다니곤 한다. 오늘은 확실히 조금 특별한 날이긴했지만.
아발론 사람들은 흥이 많았다. 세 명만 모인다면 축제가 벌어진다는 속담도 있을 정도라니 가히 그 정도를 짐작할 만했다. 겨울이 끝나고 꽃피는 봄이 오는 시기는 누구라도 조금씩 들뜨는 시기였다. 그에 봄을 환영하는 작은 연회가 열렸다. 기분좋은 날에 사람들이 모이고 나니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오늘은 조슈아가 지난 달 겪은 연회보다 조금 더 활기찼다. 
조슈아는 어색함을 느끼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하고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조슈아 경! 이만 들어가시나요?" 
"예... " 
"많이 남기셨군요. 입맛에 안 맞으셨습니까?"
"... 아닙니다." 
"서임식은 매우 이른 아침이라 식사할 시간이 없을 텐데요."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좋은 때인 줄 알았더니 눈이 뒤통수에도 달린 듯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조금 더 빨리 자리를 뜰 것을 그랬다. 조슈아는 식탁 근처에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다 만 채로 어색하게 대답하며 생각했다.
 
"샬롯, 아스파라거스는 영양분이 많습니다. 일단 한 번 드셔보십시오." 
"으엑, 맛 없는데에..."
"그래도요." 
 
다시 기회가 생겼다. 잠시 요한이 정령사에게 시선을 돌린 틈을 타 조슈아는 테이블에서 마저 몸을 빼냈다. 요한은 조슈아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샬롯 그레이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급하게 의자 다리 끄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조슈아는 자신의 재능이 염력이 아니라 순간이동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함께 가시죠. 어두우면 길이 다소 헷갈릴 수 있으니까요. "
"괜찮... 습니다만..."
"복도의 등이 아직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더군요.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 자는 은근히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어 이런 어투로 말을 할 때에는 거절을 하는 것이 입이 아플 때가 있다. 조슈아는 더 뻗대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한과 실랑이를 하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이 왁자지껄하고 행복한 웃음소리 넘치는 자리를 뜨고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백배 천배는 더 중요하다. 도화지에 검은 잉크가 떨어진 것처럼 불편한 자리다. 환영받지 못할 과거를 가진 레비턴스 전 특임대장의 서임식을 이 시기로 잡은 것도 봄을 맞이하는 기쁨과 즐거움 사이에 슬그머니 섞여보려던 계획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 빵이라도 가져가서 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남은 음식을 보면 마리 부인께서 속상해하십니다. 자, 여기 받으십시오." 
"...하아... 예... "
 
요한은 접시와 식기를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을 내내 따라왔다. 대답을 듣지 않을 것이라면 왜 물어보는가? 하여튼 요한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것저것 포장된 음식을 집어들었다. 빵을 준비하느라 조금 뒤처진 걸음걸이가 뒤에서 바짝 따라오자 본능적인 긴장감이 올라온다. 무릇 기사의 덕목은 등 뒤를 내어주지 않는 것. 조슈아는 잠시 발걸음을 늦춰 요한의 옆자리에 섰다. 그런 조슈아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한은 매끄러운 미소로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앞서서 걸어갔다. 
 
"자, 이쪽입니다. 조슈아 경"
등이 고장났다더니 복도는 훤했다. 개미새끼 하나 다니지 않는 길이 시원스럽게 뻥 뚫려 있었다. 
 
"잠자리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괜찮으시던가요? 침대가 다소 삐걱거리기는 하겠지만..."
"...괜찮습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적막한 기운이 흘렀다.
 
"어쩌다 알게 됐냐면... 그 방은 원래 제가 쓰던 방이었거든요."
하하, 요한이 멋쩍게 웃었다. 
 
'어쩌란 말인가.'
조슈아는 요한과 그다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친분이 있을 수 없는 사이였지. 아마 요한은 조슈아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는 않을 터. 그러나 어째서인지 요한은 꽤 살갑게 말을 걸고 있었다.
 
"처음 이 왕성에 들어왔을 때 배정 받은 방입니다. 꽤 오래 살았지요." 
"..."
조슈아는 성의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좋은 방입니다. 특히 풍경이 좋아요."
"..." 
요한의 목소리가 과거를 거닐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아주 큰 벚나무가 있습니다. 보셨습니까? 로드의 탄신 이전에도 있던 것이라 하더군요. 오랜 전란까지 버틴 고목이죠. " 
"..."
조슈아는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복도는 왜 이렇게 긴 지 모를 노릇이다. 
 
"아침에 그 나무를 보면 왠지 위로 받는 것 같았어요. 저렇게 굳건한 고목이 말을 건네는 기분이었지요." 
"힘든 밤이었겠구나. 그래도 잘 이겨냈네. 잘했어. 기특하다... 꼭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좁은 복도에 울리는 요한의 목소리는 특별히 훌륭하지는 않다. 길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백보에 한 번씩은 들을 법한 평범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요한의 목소리에는 온기가 있다. 걸어오는 말을 모조리 무시하면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으면서도 그의 목소리에 이끌리는 것은 아마도 그 탓이다.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숨 소리를 맞추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편하십니까?" 
"예?"
"제가 경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
"...상관없습니다."
"별 생각이 없으시군요."
"...그렇다기보다는..."
"예."
"...저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들 아닙니까."
슬슬 방에 가까워져 오는 건지 복도가 조금 어두워졌다. 숙소가 가까워져서 등을 줄인 모양이다. 조슈아는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요한이 말하기에 집중하게 되었을 뿐,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조심하십시오. 바닥이 미끄럽습니다." 
"예." 
 
마침 미끄러운 바닥을 발견해서 주의를 주다 대화가 끊겼다. 그 틈을 타 요한은 잠시 말을 골랐다. 조슈아는 원래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다. 어두운 밤 좁은 복도를 둘이 말 없이 나란히 걸었다. 등불에 비친 그림자가 어른어른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관련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동료니까요."
"..."
 
말을 이으며 보폭이 좁아졌다. 점점 느려지는 걸음걸이에 집중하다 조슈아는 고개를 들었다. 말 없이 물끄러미 요한의 옆 얼굴을 바라보면 얼굴이 선하게 빛난다. 시선을 눈치 챈 요한이 슬쩍 웃었다. 어느 새 발걸음이 멈춰 있었다.  
"그리고 조슈아 경."
"예."
"저는 경과 제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먼 곳에서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웅성웅성 어렴풋하게 들리지만 서 있는 복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죽여 속삭이는 듯 시작된 말은 엇비슷한 키 탓에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귓가에 울렸다. 조슈아는 몸이 부르르 떨리지 않도록 진정시키다 말을 놓쳤다. 
 
"... 예?"
"사실..."
요한이 말을 마저 이으며 자연스럽게 조슈아를 이끌어 미끄러운 바닥을 피해 걸었다. 조슈아는 덩달아 움직였다. 오후에 소나기가 내리기라도 한 건지 사람이 청소를 하다 말고 사라진 건지 덜 닦여 물이 고인 곳이 있었다. 요한은 이번에는 따로 알리지 않고 보폭을 키워 가볍게 도움닫기 해 웅덩이를 넘었다. 뒤이어 조슈아의 발도 같은 궤도를 그리며 웅덩이를 넘었다.
 
"사실 경께서 아발론의 기사가 되기로 결정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 그랬겠지요." 
"싫어서가 아닙니다. 음... 결국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든 돌아오는구나, 이런 느낌이었죠."
"...무슨 말씀이신지..."
"이건 처음 말씀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 예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갈루스에서 저희가 서로 적으로 만났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 예.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경에게서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 ... 예?"
정말이지 그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표정이다. 조슈아를 놀라게 하기란 꽤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요한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그는 온 몸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요한에게는 꽤 강한 확신이 있었다. 첫 인상도 첫 인상이었지만, 몇 일 함께 다니며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생긴 것이다. 조슈아에게는 가능성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은 저와 조금 닮은 부분이 있어요."
"..."
"만약 제가 갈루스에서 태어났고, 조슈아 경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면.... 그리고 경께서 아발론 태생이셨다면... 그때 우리의 입장은 완전히 반대였을 수 있습니다."
"그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여태까지와 다르게 조금 빠르고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진심입니다." 
"제가 요한 경을 잘 알지는 못해도, 저와 질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하하. 말씀하셨듯이, 아직 저를 잘 모르십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요."
"..."
 
조슈아는 더 대응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표정이다. '동의는 하지 않지만 아무튼 내가 말하자니 입이 아프니 그만 두겠다' 라는 뜻이다. 한동안 함께 했더니 조금은 구분이 가능해졌다. 굳이 밖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어쩌면 일부러 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기 시작했다- 쉽게 알기는 어렵지만 의외로 조슈아는 호불호가 꽤 명확했다. 
 
"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으로 로드를 뵙고, 동료들을 만나며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변했죠."
"..."
"하하 죄송합니다. 조슈아 경 입장에서는 꽤 당혹스러운 접근이었을 것 같네요.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살짝 당황했을 뿐입니다...."
 
-당황하기는 무슨. 
조슈아는 여전히 뚱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웃으며 저렇게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차마 '기분 나쁩니다'라고 말할 수 없으니 대답을 둘러대기만 했다. 
조슈아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신경쓰느라 바쁜 요한이 이렇게 따라나와 신경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자신은 배정 받은 방의 위치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조슈아는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요한은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 다행입니다. 이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지어도 될까요?"
"요한 경께서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
"감사합니다."
-뭐든 빨리 끝내주면 좋겠다. 
 
"조슈아경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맥락없이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닮았다고 생각하기에..."
-대단히 맥락없이 희망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저처럼 형편없는 사람도 할 수 있었으니 경께서도 능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조슈아가 묵묵히 듣고만 있자, 요한은 설핏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조슈아 경이 짊어진 짐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함께 힘냅시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언제든 저나, 다른 동료들을 찾아주세요. 저희는 동료잖아요." 
요한은 팔을 들어 천장에 붙은 등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림자 진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요한이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언제나 다정하게 웃는다. 조슈아는 보이지 않아도 선명한 그 얼굴을 익숙하게 그렸다. 눈꼬리가 가볍게 휘고 입꼬리가 올라가겠지. 맥주를 권할 때나 차를 내릴 때, 석양이 지는 걸 바라볼 때나 연무장에 바람이 불 때, 그 모든 순간에 요한은 늘 그렇듯이 웃고 있었다. 
"음, 역시 이 등이 켜지지 않네요. 내일 린님에게 말씀드려 보아야겠습니다. 나사가 조금 헐거운 것 같기도."
 
'그만.'
"요한 경. 도착 한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보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잡생각이 침투하는 것이 너무 빠르다. 조슈아는 자신의 생각들에 넌지시 축객령을 내렸다. 동시에 요한에게도. 여기서 더 어찌할 바 모르고 빠져서는 돌아올 수 없다. 객쩍은 표정으로 돌아보는 요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예에. 들어가십시오." 
요한은 살풋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조슈아는 작게 목례하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아, 조슈아 경." 
"예?" 
하지만 요한의 용건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몸을 채 다 돌리기도 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껌벅이며 조슈아가 다시 되돌아보자 요한이 뺨을 긁으며 마주해왔다.
"아까 보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군요." 
"..." 
익숙한 신소리다. 조슈아는 무어라 이어질 뒷 말을 기다렸다. 
"하하. 그럼 이만, 내일 뵙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저 작별인사였다. 예상이 어긋나 조금 어리둥절한 채 남겨진 조슈아에게 보이는 것은 어느새 떠나고 있는 요한의 등 뿐이었다. 
 
"예에, 내일 뵙겠습니다." 
조슈아는 뒤늦게 등 뒤에 대고 마주 인사를 건넸다. 요한은 슬쩍 몸을 비틀어서는 팔을 흔들어 주었다. 긴 하루의 끝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채 조슈아는 문을 열었다. 커튼이 쳐지지 않은 창문 너머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쳤다. 방에서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큰 나무가 만든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익숙한 밤 풍경이다.
 
하지만 벚나무인 것은 처음 알았다.
 
조슈아는 굳이 커튼을 꼼꼼히 쳐야만 잘 수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게다가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있는 방은 어쩐지 자신의 것 같지가 않았다. 그 탓에 처음 봤을 때부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커튼에는 따로 손 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조슈아가 보는 풍경은 요한이 예전부터 봐 왔던 바로 그 풍경일 것이다.
창 밖 외부 조명에 비쳐 나무는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면 꽃이 이리저리 흐트러졌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가지 하나가 창문으로 뻗어있었다. 나무가 꼭, 방금 손을 흔들며 떠난 요한을 닮았다. 조슈아는 자리에 망부석처럼 멈춰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이 오래 사용했다더니 방도 요한을 닮았다. 이렇게 온통 빛난다. 

"그러네..."

조슈아는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로 문에 기대어 주르륵 미끄러졌다.

나는 이토록 나를 미워하는 걸까? 라고 썼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참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피곤한 건지 생각하기 싫은건지 몽롱한 정신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가는 생각들을 그러모으다 말고 전부 던져버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의미 없는 생각인 것 같다. 점점 느끼는 건데, 의외로 세상도 사람도 그냥 다 대충 그냥 뭉개고 섞여서 살아가고 있었다. 깊게 생각해서 무언가를 구분짓거나 명확히하거나 이유를 찾을 수 없거나, 찾더라도 그것이 답이 아니거나, 찾을 이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괜히 시간과 심력을 들여서 의미 없는 고민을 하면서 스스로를 고문할 필요가 있을까? 

어릴 때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고 십여 년을 절교해 연락조차 닿지 않은 친구와 최근 다시 연락하게 되어 서로 집에 놀러가는 수준으로 다시 관계를 이었다. 걔가 만날 때마다 욕하던 친구는 그 아이가 큰 시험을 칠 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사람이라는 건 정말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다가도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정말 싫어하던 사람에게 크게 감사할 일이 생긴다. 타인을 대하는 것과 나를 대하는 것이 결국 사실은 다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언가 나만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거지. 한 사람을 그저 사랑하기만 할 수 없듯이 나라는 한 사람도 그저 사랑하기만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